詩 · 든 · 손
갈대도 처음엔 한낱 풀이었다
하잘것 없는 풀에 지나지 않았다
풀에서 잎이라는 말을 채우기까지
또 얼마나 머리를 찧었을지
목을 가누고 허리를 세우고도 휘청거렸다
나비가 날개를 접고
잠자리가 앉았다 가기도 하면서
구름을 떠받치는 날이 늘어갔다
갈대는 힘을 기르는 등 뒤에서
칼을 벼리고 있었다
손목을 베인 바람을 돌려보내고
밤이면 달을 깎아냈다
한 때 여린 풀잎이었던 갈대가
서걱서걱 잠을 쫓으며
가을을 익히는 모습에 마음이 기울어
못내 알큰하다면
그는 이미 가을의 포로다
갈대의 깊이/ 박경희
갈대의 그늘이 깊어서 슬픈 건
강물뿐만이 아니다
산을 올려다보면 산이 출렁거리고
새들로 만들어진 섬이 흘러 다니고
알게 모르게 들어간 사람이 여럿인 곳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여러 길로 머물다 돌아나가는 곳
헛기침이 뒷짐으로 얹혀지는 순간
저녁 빛이 길게 그대의 주름 안으로
내려앉는 곳
주름 안으로 갈대가 깊숙이 뿌리 내려
노을이 어두워져 가는 곳
그리하여 갈대가 내린 뿌리 어딘가 쯤에
매달려있을 그대라는
깊이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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