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위의 베르테르, 한국 농촌의 슬픈 초상**

in #steem • 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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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위의 베르테르, 한국 농촌의 슬픈 초상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주인공의 편지가 아니라, 그를 지켜보던 편집자의 서글픈 기록으로 끝이 난다. 서울의 한 오래된 아파트 거실에서, 충청도 발암리에 사는 내 오랜 친구 백호가 걸어온 전화를 받아 하소연을 들으며 나는 자꾸만 그 오래된 서양 소설의 마지막 장을 떠올렸다. 그 서글픈 이야기의 시선이, 지금 발암리를 바라보는 나의 눈과 너무나도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베르테르가 ‘로테’라는 여인에게 순수한 영혼을 바치고 절망했듯, 백호에게는 발암리의 거친 들판이 그의 평생이자 연인인 로테였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대지 앞에서 가장 순수한 청년이었고, 허리가 굽어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새벽이 오면 첫사랑을 만나러 가듯 논둑으로 향하던 우직한 농부였다. 흙을 만질 때의 백호는 세상 누구보다 당당했고 자긍심이 넘쳤다.

그러나 그 평화롭던 무대에 법전과 컴퓨터 위성사진을 들고 찾아온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는, 베르테르의 사랑을 가로막은 냉혹한 약혼자 ‘알베르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찾아간 면사무소 구석에서 나는 백호의 뒷모습을 보았다. 몸이 아파 이웃 만수에게 잠시 품앗이로 경작을 맡겼던 시골 노인들의 오랜 관행은, 국가라는 차가운 이성 앞에서는 그저 행정처분 대상인 ‘불법 임대차’에 불과했다. 면사무소 공무원들은 평생 손으로 일군 대지 앞에서 "자경(自耕)을 증명할 영수증을 대라"며 그를 투기꾼 취급했다. 귀가 어두워 법률 용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서 있던 내 친구의 굽은 등은, 이미 그 자체로 거대한 권력 앞에 무력화된 한 인간의 초상이었다.

"내가 내 땅에서 농사지은 걸 뭘로 증명하란 말인가, 자네는 알겠는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백호의 목소리는 피를 흘리듯 번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수천만 원의 이행강제금과 농업경영체 등록 취소라는 형벌이 내려졌고, 그것은 백호의 영혼을 완전히 부숴놓았다. 무엇보다 조사가 시작된 이후 발암리의 농지 거래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평생을 일군 땅값은 반토막이 났다. 땅을 팔아 농협 빚도 갚고, 농사는 짓기 싫다던 자식놈의 아파트 대출금이라도 갚아주려 했던 백호의 마지막 자부심이자 유일한 노후 보루가 순식간에 빚더미 걱정거리로 변해버린 것이다.

시골 농협조차 부실화 우려에 비상이 걸렸다. 기존 대출 이자 납입이 잘 안 되고 연체가 되다 보니 기간 연장이 어려워진다. 거부 아닌 거부가 되니 멍하니 농협 천정만 바라보던 백호는, 베르테르가 로테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깊은 실연의 절망을 겪고 있었다.

18세기 독일에서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간된 이후, 주인공의 죽음을 모방하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로 수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지금 내가 발암리의 적막한 들판을 바라보며 마주하는 가장 섬뜩하고 두려운 예감 역시 바로 그것이었다. 절망이 전염병처럼 번지는 농촌에는 "이런 가혹한 현실에서 그런 비극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흉흉한 공포가 안개처럼 감돌았다.

백호는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주변 노인들은 이미 손에 농약병을 쥐고 울부짖고 있었다. 매년 날아오는 이자에 이행강제금까지 물어야 한다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평생의 피땀이 서린 논밭에 나가 엎어져 죽겠다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평생을 바친 연인을 빼앗길 것 같은 노인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정권 한번 바뀌니 공산당 나라처럼 구느냐"며 통곡했다.

며칠 전 찾아간 백호의 집, 초점 없는 눈으로 TV 화면만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육신은 살아있으되 영혼은 이미 논둑에서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땅을 빼앗기고 농촌에서 강제로 좌절당한 농촌의 늙은 농부들. 그들의 삶은 18세기 독일 청년의 권총 자살보다 훨씬 더 길고 처절한 파멸이 될 것 같아 내 가슴이 죄어왔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투표도장 하나 잘못 찍은 대가치고는 노인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힘들어도 오직 평생의 자긍심 하나로 버텨온 수많은 농촌의 늙은 베르테르들이, 지금 차가운 법전의 단두대 앞에서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내 손에 들려있는 휴대폰에서는 아직도 백호의 절망에 찌든 한숨이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며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맺으며...


뭔가 울분을 토해 놓는 글을 쓰고 싶은데, 써야만 할 것 같은데 마음대로 써지지가 않는다.
왜 이렇게 글 쓰는 게 힘든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 대한민국 농촌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다만, 다들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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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백호님…. 어쩌나요.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운 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