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의 포도밭에서 마주한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가을
오랜 친구의 포도밭에서 마주한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가을
주말의 도로 위는 말 그대로 주차장이었다.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요일 특유의 나들이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차가 말도 못 하게 밀렸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지루한 정체 속에서도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던 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오랜 친구 때문이었다. 군대 시절, 푸른 청춘을 함께 보낸 녀석은 이제 어엿한 포도농장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서둘러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길이 막혀 농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초록빛 탐스러운 포도들이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바쁜 일손을 도우며 차 트렁크와 뒷좌석이 가득 차도록 포도를 싣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다. 무려 스무 박스. 차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포도 향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친구가 건넨 영수증을 받아 든 순간 마음 한구석에 묘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저 아쉽다고 해야 할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었다.
올해 포도 가격은 지난해의 딱 반값이라고 했다. 작년만 해도 2킬로그램 한 상자에 2만 5천 원을 호강하며 팔리던 귀한 몸이었는데, 올해는 그 배인 4킬로그램에 2만 5천 원이었다. 품종이 ‘샤인머스캣’인가 하는 녀석인데, 몇 년 전부터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자 너도나도 앞다투어 이 나무를 심은 결과였다. 농부들의 땀방울이 과잉 생산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친구의 포도는 여전히 최고였다. 알이 굵고 탱글탱글하며, 한 입 베어 물면 진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게 흠잡을 데 없는 최상품이었다. 이토록 훌륭한 결실을 맺기 위해 친구가 올여름 그 무더운 땡볕 아래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지 누구보다 잘 안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낸 포도가 제값을 받지 못하고 헐값에 넘겨지는 모습을 보는 농민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갈까. 풍년이 들어도 웃지 못하는 친구의 씁쓸한 미소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지난 추석 때 미처 챙기지 못했던 명절 선물 대신이라 생각하며, 차에 실린 포도를 파트너 분들에게 부지런히 나눠주었다. 달콤한 포도를 받으며 환하게 웃는 파트너 분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따뜻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다짐이 마음속에 싹텄다. 내년에는 스팀 상황이 훨씬 좋아져서, 그땐 스무 박스가 아니라 아예 트럭 한 대를 가득 채울 만큼 포도를 사고 싶다. 그렇게 사 온 포도를 소중한 파트너 분들에게 아낌없이 나눔 하며 풍성한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서해안 고속도로도 주차장이더군요.
포도 잘 사주셨어요.
값이 너무 떨어졌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