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수의 정치와 허울뿐인 균형, 벼랑 끝 농민의 정당방위
머릿수의 정치와 허울뿐인 균형, 벼랑 끝 농민의 정당방위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치는 평화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발명하고 유포하는 공장처럼 보일 때가 많다. 국경 너머에서는 정치적 야욕과 명분으로 인해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전쟁이 지속되는 듯하며, 국내로 시선을 돌리면 대통령과 정부,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이 매일같이 사생결단식의 싸움을 벌이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심지어 국가의 미래를 논해야 할 같은 진영 내부에서조차 권력을 쥐기 위해 서로를 헐뜯는 진흙탕 싸움이 일어나는 모양새다. 여기에 조회수와 자극적인 뉴스로 돈을 벌려는 일부 파렴치한 언론까지 가세해 갈등을 증폭시키고 나면, 평범한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피로감을 넘어선 무관심과 환멸로 이어지기 쉽다.
이쯤 되면 일반 시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대립이 매일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중대한 잘못을 하고도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들의 뻔뻔함을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차라리 정치가 없는 세상이 더 평화롭지 않을까"라는 극단적인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솔직한 심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목격하는 이 모든 끔찍한 싸움들이야말로 '정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두 명 이상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자원의 한계와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하기 마련인 듯하다. 땅, 돈, 기회, 명예 등 인간이 원하는 사회적 가치는 한정되어 있지만 인간의 욕망은 무한해 보인다. 만약 이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규칙인 정치가 없다면, 인류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물리적 폭력뿐일지 모른다. 정치가 없는 세상은 평화로운 유토피아가 아니라,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모든 것을 독식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즉, 정치는 피 흘리는 폭력적 싸움을 '말과 제도'라는 비폭력적 싸움으로 전환하는 유일한 장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현실 정치가 정의나 도덕이 아니라 '약속을 깨더라도 이기는 편에 서는 야만성'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세와 실리를 저울질하며 기회주의적으로 움직였던 강대국들의 모습처럼, 일단 이겨놓고 봐야 하는 비정한 논리는 국가 간의 전쟁뿐 아니라 국내 정치 세력간, 심지어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힘을 쥔 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법과 시스템 자체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고쳐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론장의 역할을 버리고 갈등을 중계하며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언론은, 스스로 사냥하기보다 다른 동물이 싸우고 남긴 사체를 뜯어먹는 하이에나를 닮아 있는 듯하다.
이러한 지독한 현실 앞에서 "시민이 깨어나 행동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도덕책 소리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기회주의적인 인간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판국에 나 혼자 정의를 외치다가는 희생양이 되기 십상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관심을 끄고 흘러가는 대로 내 살길을 찾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는 계산이 서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싶다. 맹목적인 믿음은 때로 배신감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기 상황에는 참지 않고 분노하지만, 지지했던 정치 세력이 정작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즉흥적인 독단으로 삶의 터전을 흔들 때, 시민은 깊은 환멸을 느끼며 돌아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가장 뼈아픈 예가 최근 농촌을 뒤흔들고 있는 '농지 전수조사' 사태가 아닐까 한다. 본래 농지 조사는 농민을 돕고 농촌을 살리기 위한 기초 조사가 되어야 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농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감시하고 단속하려는 칼날에 가까워 보인다. 평생 흙을 일궈온 나이 든 농민들은 대부분 농지를 농협에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받아 영농 자금을 대거나, 자식들 공부시키고 혼인시키는 비용, 혹은 노후 생활비와 사업 자금으로 보태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책 없는 전수조사가 시행되면서 걸핏하면 징벌성 이행강제금을 물린다고 하니, 농촌에 내려와 살려던 사람들의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어 버린 듯하다. 농지를 사겠다는 매수자가 아예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농지 가격은 폭락하고, 농민들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피땀 어린 땅이 경매로 넘어가는 비극이 속출하는 듯하다. 그마저도 유찰을 반복하다 보면 농민은 물론이고 대출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하는 지역 농협까지 동반 몰락할 위기에 처해 보인다. 뒤늦게 정부가 세금을 쏟아부어 농협 시스템은 겨우 지탱해 줄지 모르지만, 이미 전 재산을 잃고 삶이 부서진 농민들은 회생할 길이 없어 보인다. 결국 정치가 저지른 섣부른 칼질 때문에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이 화병을 얻고 끝내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끔찍한 비극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느껴진다. 농지 전수조사를 하려 했다면 이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을 꼼꼼하게 예상하고 철저한 보완 대책을 세워놓은 상태에서 진행했어야 마땅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가의 3대 요소 중 하나는 분명히 '국토'라고 배운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국토 균형 발전이니 지방 경제 활성화니 외치지만, 지금의 현실을 보면 그 모든 외침이 허구이자 사기처럼 느껴지곤 한다. 진정으로 국가의 미래와 균형을 생각한다면 구조적인 규칙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처럼 단순히 머릿수, 즉 인구 비례로만 국회의원을 뽑는 시스템이 과연 공정할지 의문이 든다. 도시 지역은 농촌의 일개 면 단위보다도 훨씬 좁은 면적에서 단지 사람이 많이 모여 산다는 이유만으로 국회의원을 대여섯 명씩 뽑아가기도 한다. 반면 농촌에서는 대여섯 개의 시·군을 통틀어 겨우 한 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예삿일처럼 보인다. 인구 논리에 밀려 농촌의 목소리는 중앙 정치에서 완전히 지워지고, 자원 배분과 예산에서도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는 듯하다.
차라리 국회의원 수를 인구 비례가 아니라 '국토 면적 비례'로 지역구를 나누어 뽑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땅이 가진 중요성과 가치를 대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친다면, 지역 소멸화나 인구 분산,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과 공정한 자원 배분 같은 해묵은 문제들이 단숨에 해결될 물꼬가 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좁은 도시에 모여 사는 이들의 이익만 대변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토 전체를 책임지는 정치를 주장하는 선구적인 정치인이 절실하게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모순과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진짜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시민은 이 거대한 시스템의 폭력과 부조리 앞에서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 도저히 성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가지 전략, 즉 '적극적인 분노의 표출'과 '완벽한 무관심'을 동시에 사용하는 시소타기야말로 개인이 존엄성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부조리를 보고 속에서 불이 날 때는 글을 쓰든 목소리를 내든 내 안의 분노를 '쏟아내야' 화병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하이에나 같은 언론과 정치인들이 파놓은 갈등의 늪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스위치를 끄고 '무관심'해져야 내 일상과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어 보인다.
더 이상 정치인을 사랑하거나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철저히 나와 내 이웃의 생존을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는 영악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특정 진영에 매몰되지 않고 내 삶을 기준으로 삼아, 내 생업을 위협하는 즉흥적인 독단에는 차가운 무관심과 냉대로 경고를 보내고, 당장 내 삶의 터전을 흔드는 정책에는 생존을 위한 정당방위로서 거세게 목소리를 쏟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치는 지긋지긋한 현실이자 변질된 괴물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인간답게 공존하기 위해 결코 손에서 놓아서는 안 되는 마지막 고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고개를 완전히 돌리는 순간, 그 정치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장악당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 없는 세상을 꿈꾸기보다, 내 정신과 삶을 지키기 위해 참여와 무관심의 균형을 잡으며,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를 어떻게 내 삶의 도구로 통제할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 것 같다.
이 글 하나를 온전히 써내기 위해 온종일 매달렸다.
어떻게 써 내려갈까 하는 생각은 이미 며칠 밤낮을 맴돌았다.
그러나 막상 펜을 들고 보니 가슴속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내지는 못한 것만 같다.
현실의 부조리를 더 신랄하게 파헤치고 싶었으나, 그조차 마음먹은 대로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구석에 깊은 욕심 하나는 남는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오늘날 우리 농촌과 농민이 마주한 비정한 현실이 날것 그대로 전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욕심이다.
감사합니다.
2026년 10월 4일
천운 올림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고심해서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구구절절히 옳은 말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