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밤, 소년 천운의 낭만

in #steem • 7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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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밤, 소년 천운의 낭만


한때 잠 못 이루는 밤은 낭만이었다. 사방이 고요해진 새벽, 창밖을 가만히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밤을 지새우는 일은 조금 고달프고 괴로울지언정, 그 속에는 언제나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뜨거운 청춘이 숨 쉬고 있었다. 머릿속을 채우던 수많은 상상과 계획들은 다가올 날들을 비추는 등불 같았다. 그때의 밤은 채워지지 않은 도화지처럼 무한한 가능성으로 반짝였다.

그러나 어느덧 그 찬란했던 세월이 소리 없이 흘러갔다. 이제 홀로 눈을 뜨고 맞는 새벽은 더 이상 희망도 아니고, 청춘의 특권도 아니다.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시계 초침 소리를 듣는 일은, 그저 내일의 피로를 걱정해야 하는 불면의 고통이자 고독한 밤일 뿐이다. 청춘의 설렘이 떠나간 자리에 남은 밤은 생각보다 차갑고 무겁다.

다행히 나는 몇 잔의 커피를 마셨다 하여 억지로 잠을 쫓아내며 심술을 부리는 친구는 두지 않았다. 덕분에 평소에는 머리만 대고 누웠다 하면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드는 축복된 인간이다. 그리하여 남들이 겪는 지독한 불면의 괴로움은 비교적 느끼지 않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처럼 간혹 나가서 걷기에는 시간이 애매할 때, 잠들기보다는 무언가를 붙들고 늘어지는 그런 시간이 있다. 사실 잠이 오지 않아서라기보다 이 새벽 시간이 참 좋아서, 일부러 초저녁에 한잠 자고 일어나 밖으로 나서는 것이다. 이 고요를 온전히 마주하는 것은 늘 즐기고 싶은 내 소중한 일상이다.

이 고요한 시간에 나는 간혹 밤하늘의 깊은 별에게 마음속에 간직한 그것을 꺼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문득, 세월에 맞지 않게 아직도 마음속 어디선가 낭만 혹은 인생의 퀘스천 마크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잇값 못하고 여전히 철없이 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혼자 겸연쩍게 웃으며 '참 주책이지 싶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서만 가만히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 그것은 정말 나에게 또 하나의 숨겨진 낭만이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 그런지 몰라도, 밤길을 밝히는 가로등이 켜져 있어도 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별이 선명하게 눈에 담긴다. 만약 조금 더 짙은 낭만을 즐기고 싶을 때면, 가로등 불빛이 조금 덜 환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만이다. 빛이 물러난 자리에 쏟아질 듯 흩뿌려진 별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덧 나는 나이를 잊고, 아직도 가슴속에 이루고 싶은 꿈이 가득한 소년으로 돌아간다. 한편 귀를 기울이면 흘러나오는 책 속의 나직한 음성은 새벽 공기를 들뜨게도 한다. 그 다정한 활자의 울림 속에 가만히 나를 묻고 별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 조용히 밀려드는 고백이 있다. '아, 이런 게 바로 행복이구나….'

간혹 주변에서 "밤중에 혼자 걷는 게 무섭지 않으냐", "외딴 길에서 사람이라도 맞닥뜨리면 겁나지 않으냐"며 염려 섞인 말을 건네오는 이들이 있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고라며 걱정해 주는 고마운 마음들이다. 그럴 때면 나는 씩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깊은 밤길을 걷다가 누굴 만나면, 내가 무서운 것보다 상대방이 나를 더 무서워할 걸요?" 내 말에 상대방도 "하긴, 그것도 맞네!" 하며 파안대소하곤 한다. 내가 조금 험상궂게 생겨서이기도 하지만, 제법 든든한 체격을 타고난 덕분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나만의 유쾌한 비결이다.

실제로 이 깊은 밤에 혼자 걸어도 아무 걱정이 없을 만큼 좋은 환경이라는 것에 늘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 밤새 환하게 켜져 있는 가로등은 내 밤길의 안전을 든든하게 담보해 준다. 간혹 외지고 어두운 곳을 걸을 때조차도 도로나 시설물들이 안전하게 잘 갖춰져 있어 발걸음에 거침이 없다. 치안과 인프라가 이토록 완벽한 풍경을 마주할 때면, '우리나라가 정말 선진국이구나' 하는 깊은 자부심이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금 차오른다.

비록 청춘은 가고 밤의 낭만은 바래졌을지라도, 이 안전하고 고요한 새벽 산책의 시간만큼은 나에게 속삭인다. 주책맞은 낭만일지라도, 안전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때로는 불빛이 비켜선 어둠 속에서 별을 올려다보고 꿈꾸는 소년이 될 수 있다면, 이 새벽은 나에게 여전히 가장 눈부신 인생의 축제라고 말이다.

2026/10/21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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