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흔들리는 양심

in #steem • 23 hours ago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흔들리는 양심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 소설 ‘행복(Bliss)’을 들으며 나는 기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함을 넘어선 주인공 버사의 과도한 행복감이 따분하고 미련해 보여 집중하기 어려웠다.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만큼 대책 없이 들뜬 태도 이면에서, 나는 무언가 거품처럼 꺼져버릴 파국을 직감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도를 넘은 환희가 어서 빨리 깨져버리기를 내심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저녁 식사에 초대된 손님들과의 시간이 무르익을 무렵, 버사는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할 남편의 배신을 목격하고 만다.
넘치도록 끓어오르던 환희는 끓어 넘치는 솥에 찬물 한 바가지를 부어버렸을 때처럼 순식간에 가라앉듯 꺼져 버렸다.
그 참혹한 종말을 보며 나는 "그럼 그렇지" 하고 기어이 안도했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가슴에 얹힌 생각의 무게는 울산바위만큼이나 무겁고 거대했다.
소설의 마지막, 여전히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배나무의 모습은 가식적인 인간의 삶을 비웃는 듯 냉혹하게 다가왔다.

내가 버사의 파국에서 눈을 떼지 못한 이유는 부부 관계의 신뢰가 무너졌을 때의 참혹함 때문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혼인 관계의 지속 시간 또한 늘어났고, 그 여파로 이혼이나 졸혼 같은 새로운 풍속이 당연한 권리처럼 자리 잡았다.
사생활 존중이라는 명목 하에 서로를 방임하면서도 그것이 쿨한 관계인 양 포장하는 세태를 보며,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죽지 않고 너무 오래 살다 보니 별의별 꼴을 다 본다"던 유명한 어느 신부님의 우스갯소리는,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내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경직된 한탄에 불과했을 것이다.

화려한 배나무 꽃 이면에 숨겨진 배신의 얼룩을 바라보며, 문득 시선을 돌려 내 안의 비겁함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신뢰를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긴 세월, 이토록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정말 중심을 잡고 있었던 걸까.
타인의 타락을 엄격한 잣대로 비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좌로 우로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어쩌면 나라는 인간도 양심이라는 것을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스스로 신뢰와는 무관한 척 끊임없이 타협하고 이동하는 나약하고 위선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버사의 들뜬 행복을 '정신병'이라 치부하며 파국을 예언했던 나의 오만함은, 어쩌면 내 안의 흔들림을 들키지 않으려 세상에 먼저 쳐둔 차가운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여전히 하얗게 피어 있는 배나무 가지 끝에, 가치와 위선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의 쓸쓸하고도 찌질한 뒷모습이 무겁게 겹쳐진다.

2026/10/15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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