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지니 퍼득 정신이 든다
날이 추워지니 퍼득 정신이 든다
살을 파고드는 매서운 냉기에 퍼득 정신이 든다.
영혼 깊은 곳에는 무언가를 격렬히 쏟아내고 싶은 열망이 여전히 고동친다.
하지만 화면 위에 거칠게 뱉어놓은 문장들은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마른 잎사귀처럼 무질서하다.
과연 이것을 온전한 나의 쓰기라 부를 수 있을까. 의미 없는 단어들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 같아 자꾸만 고개가 숙여진다.
한때는 나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던 문학 청년이었다.
무자비한 세월 속에서도 가슴속 푸른 불꽃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리만치 차갑고, 돌아보니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아닌' 지금의 나뿐이다.
대책 없는 서투름과 무력함에 대한 변명을 대체 어디서 찾고 있는 걸까.
글을 쓰려면 풍부한 독서와 경험의 깊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삶의 대부분을 생계를 위해 치열한 생업의 한복판에 던져왔다.
그렇다면 그 고단했던 노동의 흔적이라도 문장에 배어 나와야 하건만, 내 글은 내 삶을 알아보지 못한 채 등 돌려 겉돌고 있다.
삶과 글의 괴리 앞에서 나는 홀로 괴로워할 뿐이다.
진짜 글쟁이는 폭풍우 치는 밤에도 두려움 없이 창문을 여는 자라 했다.
그러나 나는 늘 망설였고, 타인의 시선에 갇혀 문장에 검열의 칼날을 들이댔다.
이제라도 거침없이 쓰고 싶지만 굳어버린 삶의 무게가 발목을 잡는다.
배움의 기회도 놓쳤고 생업의 날것도 녹여내지 못했으니, 진짜 글은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회의감이 독백처럼 맴돈다.
오늘도 수업을 듣기 위해 다치신 선생님을 춘천에서 모셔왔다.
연로하여 더 이상 가르침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스승의 마지막 열정이라도 마음속에 붙잡아 세우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스승을 앞에 모셔두고도 나는 마음을 잡지 못해 땡땡이를 치고 있다.
서툴게 흐려지는 마음을 보며 자조 섞인 한숨이 터진다.
‘내가 그렇지 뭐, 무슨 글이 되겠어. 건방이나 떠는 거지.’라며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말이다.
스스로 위안하는 말이 되겠지만 폭풍의 언덕에 부는 거친 바람은 나무에게 결코 곧게 자라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온 힘을 다해 흔들리며 버텨내라고 말할 뿐이다.
날이 추워지자 비로소 내 나태함과 서투름이 뼈아프게 만져지는 것도, 이 황야의 바람이 나를 거칠게 깨우고 있기 때문이리라.
의욕을 불태우다가도 사소한 실수에 무력해지는 유약함,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늙은 스승 앞에서 느끼는 죄책감.
이 모든 감정은 내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가능성이자 실존의 증거일 터다.
하지만 이를 위안 삼는 내 모습은 여전히 부끄럽기만 하다.
완벽하게 길들여진 문장은 박제된 새와 다름없다. 그렇기에 나는 나만의 새를 키워내야만 한다.
그 어떤 것 하나 온전히 쥐지 못해 발을 구르는 서툰 방황, 그리고 일상의 얼룩들이야말로 내 영혼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스승의 부서져 가는 육신 앞에서도 끊임없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내 안의 이 욕구가 존재하는 한, 이 거친 낙서들은 언젠가 나만의 단단한 세계를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온 추위가 오만함을 깨웠으니 이제는 온전한 정신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러니 손은 떨리고 기억은 빛바랜 영화필름처럼 비를 뿌리며 흔들려도 써야 한다.
쓰는 게 작가의 사명이고 스티미언의 직무이다.
내 안의 거친 바람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나는 이 떨림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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