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의 수다#921] 일상으로 나온 히로시마 불단의 옻칠

in #kr • 3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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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불단을 둘러보고 나니 옆에 놓인 작은 그릇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면 도자기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들은 흙으로 만든 도기가 아니라 옻칠로 완성한 칠기다.

작가는 고야마 나오야(高山尚也). 히로시마에서 대대로 불단을 만들어온 집안의 4대째로, 전통적인 불단 제작과 옻칠 기술을 이어가면서 이를 현대적인 생활용품으로 확장하고 있다.

사진 속 그릇처럼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에는 건칠(乾漆) 기법도 활용된다. 형태를 만든 뒤 천이나 종이 등에 옻을 여러 겹 입혀 바탕을 만들기 때문에 나무로 만드는 칠기보다 다양한 곡선과 형태를 표현할 수 있다.

색을 만드는 과정도 생각보다 까다롭다. 옻은 일반적인 페인트처럼 원하는 색을 자유롭게 섞어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옻과 안료의 조합, 건조 과정 등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색이 제한적이다. 특히 붉은색은 비교적 다루기 쉬운 반면 푸른색 계열은 더 어려운 편이라고 한다. 사진에서도 검정과 붉은색 계열의 작품이 많이 보인다.

이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불단을 만들던 전통 기술이 일상적인 그릇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불단에 사용하던 깊은 광택의 옻칠을 술잔이나 그릇 같은 생활용품에 적용하면서 전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생활에 맞게 변형하고 있다.

특히 2023년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는 고야마 나오야의 작품이 각국 정상과 배우자들에게 선물로 전달되기도 했다. 전통적인 히로시마의 옻칠 기술이 현대적인 공예품을 통해 다시 소개된 셈이다.

불단에서 보았던 화려한 옻칠과 금빛 장식이 이렇게 작은 그릇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오래된 기술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과 그것을 지금의 생활 속에서 계속 사용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인데, 이곳에서는 그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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