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의 역설 - 우리는 왜 살이 찌는가

in #kr-book • 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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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힘 페티스의 《비만의 역설 - 왜 뚱뚱한 사람은 더 오래 사는가》는 제목부터 상당히 도발적이다. 우리는 흔히 비만을 건강의 적이라고 배워왔다. 건강검진에서는 체중을 줄이라고 말하고, 방송에서는 다이어트 비법이 넘쳐난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왜 뚱뚱한 사람이 더 오래 사는가?'

물론 저자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비만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비만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빠르고 쉬울 뿐더러 위험하지 않고 건강한 체중 감량 비법이란 없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이 책이 흔한 다이어트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만은 의지력의 문제인가

우리는 살이 찐 사람을 보면 너무 쉽게 이유를 찾는다. 먹는 것을 참지 못해서. 운동을 하지 않아서. 의지가 부족해서. 체중을 마치 도덕성의 문제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날씬한 사람은 자기관리를 잘한 사람이고, 비만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암묵적인 판단이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다.

그가 내리는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비만은 개인의 의지보다 사회적 스트레스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가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살이 찐다고 그는 말한다. 이 표현이 꽤 인상적이었다. 현대인은 실제로 굶주림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 경쟁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공포,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살아간다. 몸은 그 스트레스를 기억하고, 그 결과가 비만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만의 역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비만의 역설(Obesity Paradox)'은 여러 의학 통계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심근경색 환자의 경우 비만 환자가 정상 체중 환자보다 생존율이 더 높게 나타나는 연구들이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신부전, 뇌졸중, 뇌출혈과 같은 여러 급성 질환에서도 보고되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하는 비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비만인과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 날씬한 사람을 비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날씬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같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비만한 사람이 더 높은 생존율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물론 이것이 비만이 건강에 좋다는 뜻은 아니다. 비만은 심혈관 질환의 중요한 위험인자이다. 다만 질병이 발생한 이후에는 충분한 에너지 저장과 여러 생리학적 요인 덕분에 회복 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비만의 역설'이다.

이기적인 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이기적 뇌(Selfish Brain)' 이론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몸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모든 장기가 공평하게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뇌가 가장 먼저 살아남는다.

굶주림이 지속되면 지방뿐 아니라 근육, 심장, 간, 신장과 같은 장기의 질량도 크게 감소할 수 있다. 하지만 뇌는 필요한 에너지를 끝까지 확보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뇌는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고, 다른 조직으로부터 에너지를 가져온다. 우리는 흔히 몸이 뇌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몸이 뇌에게 에너지를 강탈한다. 이는 조금 과격한 비유이지만, 이기적 뇌 이론의 핵심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표어가 아닌가 싶다.

복부비만은 왜 생길까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지방도 모두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지방을 크게 체지방과 복부지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체지방은 근육과 심장 등 신체 조직의 에너지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복부지방은 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 저장고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만성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Neuropeptide Y(NPY)와 같은 물질이 분비되면서 복부지방 축적이 촉진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마른 체형인데 유독 배만 나온 사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배가 나온 사람에게 운동부터 권한다. 하지만 이 책은 먼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은 얼마나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가.

왜 어떤 사람은 살이 찌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을까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어떤 사람은 살이 찌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이를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 전략의 차이로 설명하며 사람을 A형과 B형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차이는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과 앞이마옆피질(prefrontal cortex), DSI(Depolarization-induced Suppression of Inhibition) 등 신경생리학적 차이와도 관련될 수 있다고 소개한다. 다만 이 역시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인 분야이며, 개인을 명확하게 두 유형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비만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살이 찐 사람에게 자기관리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비만 뒤에는 스트레스, 호르몬, 뇌의 에너지 조절 시스템, 유전적 요인, 그리고 사회경제적 환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책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비만의 역설'은 지금도 의학계에서 논쟁이 이어지는 주제이며, 연구마다 결과도 조금씩 다르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비만이 건강에 좋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는 결과에는 민감하지만 원인에는 무심하다. 살이 찌면 다이어트를 권하고, 우울하면 마음을 다잡으라고 말하며, 번아웃이 오면 휴식을 권한다. 하지만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사회적 환경에는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독서를 마치고 나니 책 제목이 조금 다르게 읽혔다. 처음에는 '왜 뚱뚱한 사람이 더 오래 사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책을 덮고 난 뒤 내게 남은 질문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비만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려 하는가.

체중은 눈에 보이지만, 그 사람이 견뎌온 스트레스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체중계 숫자는 측정하지만, 사회적 불안과 경쟁, 경제적 압박이 사람의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는 쉽게 잊는다. 아마 이 책이 정말 말하고 싶은 '역설'은 비만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몸과 사회를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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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그 중에서도 저는 특히 체지방과 복부지방을 달리 봄으로써
전체적으로는 마른 체형인데 유독 배만 나온 사람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

the part about the selfish brain hoarding energy really changes how you look at chronic stress and weight gain

괜히 살이 찌는게 아니라는 거군요.
부장이 갈구고 돈타령 하는 가족이 있으니 스트레스 받을 수 밖에 없고요
사회 구조가 살 찌게 만드네요.
재밌는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