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공, 그리고 작은 술통
소년공, 그리고 작은 술통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대를 건너왔다.
막연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낸 그 거칠고 팍팍했던 시절을 그 또한 똑같이 호흡하며 걸어왔으리라는 사실이다. 가난과 노동의 냄새가 자욱했던 그 시대의 공기를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그의 삶을 남보다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스스로를 '소년공 출신'이라 말할 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연민과 애정이 소용돌이쳤다. 그 애정의 뿌리는 너무나도 깊고 정직한 것이었다.
나 역시 가난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찾아가 문을 두드린 '소년공'이었기 때문이다.
책가방 대신 작업 도구를 손에 쥐어야 했던 봄 같은 15살, 내 몸보다 큰 기계들 사이에서 하루를 보냈던 그 시절의 서러움을 나는 온몸으로 기억한다. 그렇기에 70년대 전반기, 나의 푸른 청춘이 차갑고 육중한 프레스 기계 앞에서 서슬 퍼런 칼날을 마주하며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동료들을 보아야 했던 그 공포의 나날들은, 그와 내가 공유한 날것의 역사였다.
가난하고 힘없는 소년들이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온몸으로 한강의 기적을 떠받치던 시절, 우리에게 내일은 사치였고 오늘을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과제였다.
그 거칠던 공장의 기계 소리가 마침내 내 몸처럼 익숙해졌을 때, 삶은 나를 또 다른 낯선 궤도로 이끌었다.
논산 육군훈련소의 붉은 흙먼지 속에서 민간인의 때를 벗겨낸 청춘은, 부산 병기학교를 거쳐 한반도에서 가장 춥고 험하다는 최전방, 강원도 양구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나는 무려 35개월이라는 길고 꽉 찬 군 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당시 대학을 다니다 온 친구들에게 주어지던 몇 달간의 복무 기간 단축 혜택은, 35개월을 온전히 채워야 했던 내게 지독하리만치 불공평하게 다가왔다.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린 이의 가슴 아픈 열등감은 길고 긴 초소의 밤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군대라는 기묘한 섞임의 공간에서 나는 인생을 바꾼 거대한 반전을 마주했다.
내가 늘 우러러보며 열등감을 느꼈던 대학생 동료들과 함께 먹고 자고 구르며,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발휘되는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이 거친 산업 현장에서 뼈가 굵은 내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순간, 내 영혼을 수년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던 열등감의 바위가 단숨에 벗겨져 나갔다. '나도 저들 못지않게 훌륭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구나.'
내 안에서 솟구쳐 오른 정직한 자신감 덕분에, 나는 제대 후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당당히 고개를 들고 내 인생을 이만큼이나마 꿋꿋하게 끌고 올 수 있었다.
물론 나와 그의 삶에는 결정적인 갈림길이 있었다.
같은 소년공 출신이었지만 그는 특별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이어갔고, 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장남이라는 무게 때문에 공부를 완전히 접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내게 원망이나 질투가 없었던 것은, 나 역시 군대에서 얻은 단단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봄 같은 15살 소년공의 배고픔과 아픔을 아는 사람이기에 그가 걷는 정치는 다를 것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기름냄새를 기억하고, 인생의 열등감을 딛고 일어선 사람만이 진정으로 힘없는 대중을 위한 정치를 하리라 확신했다. 공부를 접어야 했던 내 청춘의 아쉬움을 그가 대신 채워 세상을 선하게 바꿔줄 것이라는 기대는, 가난했던 시절을 보낸 나 자신에게 보내는 가장 뜨거운 응원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깊었던 탓일까. 시간이 흐르며 마주한 현실은 믿음의 궤적을 서글프게 비껴갔다.
앞에서는 달콤한 꿀단지를 내밀며 당장 배고픈 대중을 위로하는 듯하지만,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는 전혀 다른 정치적 계산과 무서운 일들이 소리 없이 꾸며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내가 군대에서 발견했던 '인간의 정직한 당당함'과 달리, 그의 정치는 어쩌면 소년공이라는 우리의 아픈 과거마저 정교하게 이용하는 기획된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서늘함이 엄습했다.
그 순간 기 드 모파상의 단편 소설 《작은 술통》이 떠올랐다.
노파에게 매달 공짜 돈을 쥐여주며 안심시키고, 뒤로는 그녀가 빨리 죽기만을 바라며 매일 밤 독한 술을 권하던 탐욕스러운 여인숙 주인 쉬코의 모습. 겉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호의와 꿀단지를 내밀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을 목적이 아닌 도구로 삼는 차가운 칼날이 숨겨져 있던 그 기만적인 풍경이 어째서 그의 행보 위로 겹쳐 보이는 것일까.
왜 그의 정치는 소년공의 진솔한 땀방울이나 군인들의 정직한 헌신이 아니라, 쉬코의 음흉한 술통을 닮아가는 것처럼 보일까.
소년공이었다는 공동유대로 솟구쳐 오른 연대감과 믿음이 허물어질 때 찾아오는 쓸쓸함은 생각보다 깊다.
그에게도 그 '작은 술통'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의문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1970년대의 거칠고 열악한 작업장과 양구의 전방 부대에서 열등감을 깨부수고 당당하게 인생을 일구어 온 이로서 보냈던 순수한 애정의 기억이, 이제는 인간의 탐욕과 권력의 위선을 성찰하는 가장 씁쓸한 질문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요즘 상실감이 크다.
그래 그런가 글쓰기가 촉을 아주 뾰족하게 갈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글쟁이라면 잘못은 비판은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당장의 피해자가 내가 되기에 더 크게 느끼는 것이기도 할 테지만 말이다.
정말 기대를 많이 했기에 실망도 감당이 안되게 커지고 있다.
이 또한 내 책임일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2026/10/05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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