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고마움이 물드는 계절
가을, 고마움이 물드는 계절
바람의 온도가 제법 서늘해지면, 마음에는 이상하게도 촉촉한 빈 공간이 생긴다. 흔히들 가을을 타며 쓸쓸하다고 말하지만, 올해 나의 가을은 조금 다른 색으로 물들고 있다. 맑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하나의 단어가 툭 떠올랐다.
‘고맙다.’
참 신기하게도 세상 모든 것이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거창한 성취를 이뤄서가 아니다. 그저 이 좋은 시절에 태어나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만큼 아무 일 없이 살아왔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그 평범한 사실 자체가 문득 기적처럼 다가온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가진 특유의 센티한 분위기 때문일까. 자꾸만 가만히 생각에 잠기게 되고, 그 생각의 끝은 언제나 감사함으로 귀결된다.
물론 지금의 삶이 완벽하다거나 아무런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짐을 지고 살아가듯, 나에게도 지금 이 순간 넘어야 할 고단한 고개들이 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세상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지금 아무리 삶이 팍팍하고 어렵다 한들, 당장 오늘 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전쟁통 속의 나라들보다 더 어려울까. 내가 살아오며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한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며 헌신하셨던 우리 부모님들의 청춘보다 더 치열하고 고생스러웠을까.
그분들이 흘린 땀방울과 눈물 위에서 나는 지금 이 선선한 가을바람을 안락하게 음미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마주한 시련은 투정이 될 수 없고, 지나온 날들에 대한 아쉬움은 사치가 된다.
가을은 나무가 자신을 비워내며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보여주는 계절이다. 내 마음도 불필요한 욕심과 불만을 비워내니, 그 자리에 고마움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색이 차오른다.
때를 잘 타고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이번 가을은 쓸쓸함 대신, 내 삶을 둘러싼 모든 당연한 것들에 고개를 숙이는 속 깊은 감사의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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