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와 팩트』 —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세상에는 우리를 현혹하는 가짜들이 너무나 많다. 음모론, 유사과학, 대체의학, 과장 광고, 사이비 종교, 사기꾼, 그리고 과학의 옷을 입고 사람들을 속이는 미신들까지. 흔히 지성이 있고 많이 배운 똑똑한 사람이라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이 배웠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비합리적인 판단에 빠질 수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나름의 방식으로 합리성의 결핍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가짜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주장의 허점을 밝혀내고 반박하더라도 음모론이나 유사과학은 또 다른 그럴듯한 이야기로 그 자리를 메운다. 하나의 주장이 무너지면 그와 비슷한 주장이 등장하고,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면 기존의 믿음을 수정하기보다 그 증거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 사실을 바로잡는 일만으로는 거짓된 믿음을 완전히 없애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췌장 신경내분비종양 진단을 받은 뒤 수술을 미루고 대체요법에 의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 사례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치료법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노벨 화학상과 평화상을 수상한 라이너스 폴링도 흥미로운 사례다. 그는 비타민 C의 효능을 강하게 주장하며 관련 저술을 남겼지만, 비타민 C의 고용량 섭취가 다양한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그의 주장 중 상당수는 이후의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폴링은 DNA 구조 연구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다. 그는 DNA의 삼중나선 구조 모형을 제안했지만, 당시에는 DNA 구조를 정확히 규명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해석에 한계가 있었다. 왓슨과 크릭 역시 처음부터 이중나선 구조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DNA의 구조를 밝혀내는 과정에는 여러 연구자의 가설과 시행착오, 그리고 X선 회절 자료를 비롯한 실험적 증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뛰어난 과학자조차 자신이 가진 지식과 직관만으로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 즉 켈빈 경의 사례도 떠오른다. 그는 지구의 나이를 추정하면서 지구의 냉각 과정을 바탕으로 계산했지만, 방사성 붕괴와 지구 내부의 열 생성에 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짧은 연대를 제시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잘못된 계산이지만, 당시 이용할 수 있었던 지식과 물리적 모형의 한계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과학은 권위자의 직관만으로 진리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증거와 더 나은 이론에 따라 기존의 결론을 수정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주장은 지능과 합리성을 구분한다는 점이다. 지능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반면 합리성은 분석적 사고와 과학적 방법을 익히고 훈련함으로써 발전시킬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주어진 정보에서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고 자신의 판단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과학적 회의주의를 바탕으로 여러 사회적 쟁점에 목소리를 내 온 인물이다. 그는 백신 접종에 대한 잘못된 주장, 암 환자와 자폐인을 대상으로 한 유사과학적 치료 및 사기, 기후변화와 원자력에 관한 논쟁 등에서 과학적 근거와 개인의 정치적 성향, 편견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다룬다. 이 책은 그가 이러한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거짓과 왜곡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책을 읽으며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여러 가지 논리적 오류를 통해 세상의 가짜들을 해체하는 과정이었다. 형식적 오류에는 부정 오류나 후건 긍정의 오류 등이 있고, 비형식적 오류에는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이나 잘못된 인과관계, 논점과 무관한 주장 등이 있다. 이런 오류들은 논리학 교과서에만 등장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음모론과 유사과학, 과장 광고, 사이비 종교 등 현실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현혹하는 주장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접할 때는 그 사실이 놓인 맥락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주장의 논리적 구조를 살펴보고, 기억과 감각이 왜곡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며, 통계 수치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숫자가 제시되었다고 해서 그 주장이 자동으로 과학적인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표본은 적절하게 구성되었는지, 비교 대상은 타당한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닌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또한 기계적 중립이 언제나 합리적인 태도인 것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서로 다른 두 주장이 존재한다고 해서 양쪽에 동일한 무게를 부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증거의 양과 질, 논증의 타당성에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를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양쪽의 주장을 똑같이 소개하는 것이 겉으로는 공정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증거가 뒷받침하는 결론을 흐리게 만들 수도 있다.
결국 진실은 단순하지 않다. 거짓말과 통계, 편향과 왜곡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더구나 우리는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믿는 순간에도 편견이나 잘못된 추론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오류를 찾아내는 능력만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 역시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점검하는 태도일 것이다.
이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인간이 가진 가장 뛰어난 능력 중 하나는 생각하고, 반성하고, 추론하는 능력일 것이다. 하지만 그 능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타당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고의 함정을 이해하고, 근거를 따져 보고, 자신의 믿음까지 의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합리적인 판단에 가까워질 수 있다.
가짜가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무조건 의심하는 태도라기보다, 무엇을 얼마나 의심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다른 사람의 주장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비슷한 주제를 조금 더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고 싶다면, 함께 읽어 볼 만한 책들도 있다.
먼저 헥터 맥도날드의 『만들어진 진실』은 동일한 사실이라도 어떤 정보를 선택하고 강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다룬다. 사실 자체를 조작하지 않더라도, 사실을 배열하고 해석하는 방식만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의 구분을 넘어, 사실이 어떻게 선택되고 구성되어 특정한 메시지로 전달되는지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관련해서 예전에 작성했던 글도 함께 소개한다.
또 다른 책은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의 『가장 위험한 책』이다. 이 책은 고전 문헌이 후대에 어떻게 해석되고 활용되는지, 그리고 원래의 맥락에서 벗어난 해석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같은 텍스트라도 어떤 맥락에서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본래의 의미와 전혀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앞서 소개한 책과도 연결되는 주제가 있다. 이 책에 관해 썼던 글도 함께 남겨 둔다.
세 책은 각각 합리적 판단과 논리적 오류, 사실의 선택과 구성, 텍스트의 해석과 맥락이라는 서로 다른 측면에서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살펴본다. 결국 어떤 주장을 접했을 때 그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그 사실이 어떤 맥락에서 제시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어른들이 그래서 천재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라고 하나 봐요.
beo님도 옆에 똘똘한 비서를 두셔얄듯….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