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진보』 -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광범위한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렇게 되느냐 아니냐는 사회가 내리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선택의 결과이다.
『권력과 진보』는 기술의 발전이 곧바로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지난 1,0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그로 인해 발생한 이익이 과연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를 살펴본다.
역사를 보면 기술 발전의 혜택이 해당 기술과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초기 농업에서 나타난 여러 기술 발전은 당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농민들의 삶을 크게 개선하지 못했다. 오히려 생산성 향상으로 만들어진 잉여가 지배계층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은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현대적인 산업사회를 만들어냈지만,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삶이 곧바로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생산성의 증가가 노동자들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조상들보다 훨씬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선택이다. 산업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시민과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되기 시작했고, 노동조합과 정치적 참여 등을 통해 기술의 방향과 노동조건에 대해 소수의 지배계층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던 구조에 도전했다. 그 결과 기술 발전으로 만들어진 이익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술 발전과 번영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임금도 올라가고 모두가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생산성 밴드왜건’식 낙관론은 역사적으로 항상 성립했던 것이 아니다. 생산성이 증가했다고 해서 그 이익이 자동적으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익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이다. 저자들은 기술 발전의 방향이 사회적·정치적 힘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의 AI 발전을 바라보는 데에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AI는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지만, 그 혜택이 사회 전체에 골고루 돌아가는 것은 결코 보장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현재의 AI 발전은 소수의 기술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집중시키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역할과 권한이 축소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주고 있다.
물론 AI가 과거의 기술 발전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주장을 적용해보면 중요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AI가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되는 것과, 그 생산성 향상의 이익이 사회 전체에 공유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은 이러한 전체적인 주장을 직접적으로 전개하고, 나머지 장에서는 농업사회부터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를 뒷받침한다. 천 년에 걸친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기술 발전이 어떻게 사회의 권력관계와 결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기술 발전을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 달라진다. 우리는 흔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편리하게 만들고 생산성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권력과 진보』는 그보다 한 단계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기술로 인해 만들어진 더 큰 부와 생산성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기술의 발전 자체를 막을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이익을 어떻게 분배하고, 어떤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사회적·정치적 선택 역시 중요하다. 특히 AI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던지는 질문은 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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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읽었던 몇 권의 책들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먼저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인간의 사고방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기술은 우리의 능력을 확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생각하고 집중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는 기술의 발전을 단순히 ‘더 나은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권력과 진보』의 문제의식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https://steemit.com/krbook/@beoped/3qah79-ai
교육과 능력주의에 관한 책들도 비슷한 생각을 다른 방향에서 보여준다.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는 교육과 지식의 확대가 사회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반드시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지만, 교육과 시험을 통한 경쟁이 오히려 기존의 사회적 격차를 재생산하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https://steemit.com/krbook/@beoped/4vjsb8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역시 비슷한 문제를 능력주의라는 관점에서 다룬다. 개인의 성공을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만 바라보게 되면, 그 성공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 환경과 운의 요소를 쉽게 간과하게 된다. 그리고 능력주의가 사회의 지배적인 원리가 될수록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온전히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 역시 자신의 실패를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
https://steemit.com/krbook/@beoped/4zgktc
이렇게 생각해보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시험능력주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권력과 진보』와 상당히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기술, 교육, 능력주의와 같은 것들은 일반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고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는 결국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와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나 교육, 능력 그 자체가 좋은가 나쁜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라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들과 『권력과 진보』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서로 다른 분야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모두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발전’이라는 개념을 한 번쯤 의심해보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 큰 지식이 없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누가 차지하느냐가 핵심이었고, 인공지능도 그렇게 될 거 같아요.
AI 같은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양극화현상이 더욱 벌어 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