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13) 투자의거장 49/90 버나드 바루크

in #kr • yesterday

투자의 거장 90인 (49/90)

버나드 바루크 (Bernard Baruch) · 역사적·고전 인물
발행일: 2026-10-13 (KST) · Lifefit 거장 시리즈

인물탐구를 스팀 독자에 맞게 재구성했습니다. 수치·일화는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구두닦이의 조언을 들은 날

1929년 여름, 바루크는 월스트리트에서 구두를 닦다가 소년이 종목을 추천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그날 보유 주식을 모두 정리했다. 몇 달 뒤 대공황이 터졌다. 그가 시장을 빠져나온 이유는 예언 능력이 아니었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을 때, 나는 나간다"는 원칙을 수십 년간 지켜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 바루크는 수없이 조롱받았다. 시장이 오를 때 팔아서 '너무 이르다'는 비난을, 폭락 이후 다시 살 때는 '아직 이르다'는 핀잔을 들었다. 월가 동료들은 그를 겁쟁이라 불렀고, 언론은 그의 매도를 시장에 대한 배신으로 해석했다.

25세에 중개인을 그만두고 자기 돈을 굴린 이유

바루크는 1890년대 월스트리트에서 중개 업무를 시작했다. 고객 주문을 처리하며 수수료를 받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이 구조의 한계를 깨달았다. 남의 돈을 맡으면 손실을 설명해야 하고, 고객의 조급함에 끌려다니며, 수익이 나도 대부분은 고객 몫이었다. 25세에 그는 독립해 자기 자본만으로 투기를 시작했다. 손실이 나면 자신만 책임지고, 이익도 온전히 가져가며, 무엇보다 군중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펀드를 만들지 않았고, 남의 돈을 맡지 않았다. 대신 정보를 직접 모으고, 기업 경영진을 찾아가 질문하고, 산업 현장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 이 독립성이 그가 시장 분위기와 반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구조적 기반이었다.

손절 규칙과 다양화의 반복

바루크는 자서전 《Baruch: My Own Story》에서 자신의 투자 원칙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손실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무조건 팔았다. 그는 "손실을 빨리 자르고, 이익은 천천히 키운다"는 문장을 반복해 언급했다. 둘째, 한 종목에 전 재산을 걸지 않았다. 아무리 확신이 서도 분산했고, 현금 비중을 항상 유지했다. 셋째, 시장이 과열되면 단계적으로 매도했다. 정점을 맞히려 하지 않았고, "황소장에서도 곰장에서도 돈을 벌 수 있지만, 욕심쟁이는 파산한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 원칙들이 항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1차 대전 직후 원자재 가격 급등에 베팅했다가 시장이 예상보다 빨리 꺾이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그는 이 실패 이후 더 철저히 분산하고, 레버리지를 줄였다.

월가와 백악관을 오간 경력

바루크는 투기로 번 돈을 바탕으로 1차 대전 중 윌슨 대통령의 전쟁산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전쟁 물자 배분과 가격 통제를 책임졌고, 전후에는 베르사유 평화회의에 경제 고문으로 참여했다. 이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비공식 조언자로 활동했으며, 루즈벨트와 트루먼 행정부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공직을 맡을 때도 자기 돈으로 투자를 계속했고, 정치 정보를 투자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계와의 밀접한 관계는 그가 정책 변화를 남들보다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는 의심을 낳았다. 그는 이 비판에 대해 "나는 공개된 정보만 썼고, 내부자 거래는 한 적 없다"고 반박했지만, 논란은 평생 따라다녔다.

공원 벤치의 전설과 말년

바루크는 말년에 뉴욕 센트럴파크와 워싱턴 라파예트 공원의 벤치에 앉아 정치인·기자·사업가와 대화하는 모습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사무실보다 공원 벤치를 선호했고, "공원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앉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장면은 언론에 자주 실렸고, 그는 '공원 벤치의 현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투자 성과는 1929년 이후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1965년 사망할 때까지 자기 자본을 관리했지만, 후반기 수익률이나 운용 규모는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다만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큰돈을 잃은 적도 있고, 실수도 많이 했다"고 인정하며, 투자자는 완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개인 투자자라면 이렇게

  1. 손절 기준을 미리 정하고 자동화하라 — 매수 전에 손절 가격을 정하고, 증권사 앱에서 손절 주문을 미리 걸어둔다.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고, 바루크처럼 "손실을 빨리 자른다"는 원칙을 기계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2. 한 종목 비중을 전체 자산의 10% 이하로 제한하라 — 아무리 확신이 서도 한 종목에 전 재산을 걸지 않는다. 나머지는 다른 업종 주식과 현금으로 나누어, 한 종목이 폭락해도 전체 손실이 제한되도록 구조를 만든다.

  3. 주변이 모두 사라고 할 때 매도 일정표를 짜라 — SNS·뉴스·지인이 동시에 같은 종목을 추천하면, 전량이 아니라 보유분의 30~50%를 먼저 팔고, 이후 상승분은 단계적으로 처분한다. 정점을 맞히는 대신 과열 구간에서 빠져나오는 데 집중한다.

따라하면 안 되는 것: 정치인·공직자와의 인맥을 투자 정보원으로 삼는 행위. 개인은 그런 인맥도 없고, 내부정보 이용은 불법이며, 바루크 시대와 달리 현대는 규제가 엄격하다.


🏷 분야: 역사적·고전 인물 · 무대: 개인 / 공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