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6권(45)

그러나 적은 아 제2연대에 의하여 예기치 않은 완강한 저항을 받아 예정대로 공격이 진척되지 아니함에 5월 19일 야간 그의 예비 사단인 제189사단마저 아 사단 정면에 투입하였다.
이와 같이 중공군 제63군의 3개 사단은 실로 46시간이란 장시간에 걸쳐 아 제2연대를 포위하고 육박전을 전개하였으나, 5월 20일 05:00를 기한 획기적인 아군의 공격 이전으로 말미암아 사단 정면을 맹렬히 공격하던 적 제63군 주력은 점차 후퇴를 시작하였다. 그간 적의 소질은 우수한 편이었으나, 사기는 저하되어 있었다.
이러한 적은 축차 홍천강 북안~북한강 북안~38선 이남에서 아군을 저지하고 주력을 급속히 38선이북으로 철수할 기도였는데 22일부터 25일에 이르는 4일간에 걸친 아 사단의 집요한 추격으로 중공군의 제63군과 아 사단 우익 미 제7사단 정면으로부터 원동리 방면에서 북한강을 도하 후퇴 중이던 제60군 제180사, 제79사의 패잔병은 26일 지암리 남방 일대에서 완전히 포위되었고 27일 18:00 동부 미 제10군단 전면에서 후퇴 중이던 중공군 제15군, 제27군, 제12군, 제20군의 패잔병 일부는 점차 서북방으로 이동 대곡리, 구만리 방면으로 퇴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이상의 적의 병력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제63군 제87사 약 8,000명
제188사 약 9,000명
제189사 약 8,000명
제15군, 제27군, 제12군, 제20군의 패잔병 약 15,000명
총계 약 40,000명이었는데 장비는 산악전에 편리하도록 105밀리 유탄포와 82밀리 박격포 이외에는 중장비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의 사기 고무와 신경전에 사용할 꽹과리, 북 등을 휴대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었다.

  1. 아군의 상황
    단기 4284년 4월 24일 적의 제1차 춘계공세로 말미암아 사창리에서 철수한 장도영 준장 휘하 약 10,000명의 제6사단은 105밀리 야포 20문, 81밀리 박격포 30문, 60밀리 박격포 50문 등 적을 능가하는 우세한 장비와 아울러 많은 전투 경험을 쌓은 백전연마(百戰鍊磨)의 부대로서 작전 지구 내의 협소한 보급로를 극복한 원만한 보급은 사기를 돋구어 사창리 지구의 눈물겨운 철수 작전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욕이 비등(沸騰)하고 있었다.
    사단장 장도영 준장은 북한강과 홍천강 남안 일대에 송대후 대령이 지휘하는 제2연대로 하여금 요지에 거점을 확보하여 강력한 경계진지를 구축하게 하는 동시에 주저항선인 용문산 일대에는 양중호 대령이 지휘하는 제7연대를 배치하고 임익순 대령이 지휘하는 제19연대는 이를 사단 예비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제2차 춘계공세를 위한 적의 움직임에 대하여는 아 제2연대의 배치 지역을 주진지인양 가장하여 적 주력을 그곳으로 유인 협공함으로써 진지에서 타격을 가한 후 공세로 이전하여 청평 저수지, 홍천강 선에서 이를 압축 섬멸할 기도 하에 적의 동태를 의시(疑視)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