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6권(44)

제3항 화천 용문산 전투
一. 일반상황

  1. 기상
    단기 4294년 5월 16일부터 5월 27일에 이르는 동안 본 작전 지구의 기상은 작전 초기부터 운무가 계속되어 사계 및 관측이 불량하였으므로 아군에 있어서는 특히 항공지원과 포 지원에 극심한 제약을 받았다. 더욱이 작전 후기에 있어서의 3일간 쏟아져 내린 폭우는 아방의 추격전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였다.
  2. 지형
    경기도 양평 북방에 위치한 용문산은 해발 1,157m의 고봉으로 그 북방 주변의 크고 작은 봉우리는 모두 용문산으로부터 감제 당하고 있었고 멀리 동북방 70m 지점의 화천에 이르기까지의 산악지대는 개략 표고 800m를 전후하는 높이였으나, 울창한 삼림과 경사도가 심하여 험준한 지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 중 북한강 북방에 위치한 계왕산 및 북배산은 적이 용문산을 공격하기 위한 주 진지로서 가장 적합하였다. 그러나 본 작전지역 중앙에 동서로 가로놓인 북한강과 홍천강의 두 하천은 피아간 작전 행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그 도하작전에는 많은 희생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교통망이 결코 불편할 정도는 아니어서 청평으로부터 가평, 지암리에 이르는 접근로와 가평에서 춘천으로 통하는 것 또 춘천에서 추양리와 구만리를 경유하여 화천에 이르는 여러 접근로가 있었으나 아군이 사용할 수 있는 접근로는 기복과 굴곡이 심한 산간 소로뿐이어서 기동에 극심한 제한이 가하여졌다.
  3. 적의 상황
    제1차 춘계 공세에서 38선 돌파에 성공한 중공군의 사기는 자못 격앙한 바 있었으나, 적은 일단 가평선에서 정지하고 구만리 발전소를 그들의 식량보급소로 정하여 콩가루, 수수분, 깨분 등을 혼합한 휴대용 식량을 산적하였으며, 춘천 동북방(춘천-구만리동 간)도로, 양측 호에는 굉장한 수량의 각종 탄약을 은폐 저장하는 등 아군의 맹렬한 공습하에도 불구하고 식량 탄약 등의 보급품 확보에 노력하였다.
    또한 구만리 발전소 후산에 폭격과 포격에 능히 견딜 수 있는 견고한 호진지를 구축하여 중공군 제27군 사령부가 들게 하는 등 도처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였다.
    5월 초순경 서부전선으로부터 중공군 제19병단의 제63군과 제64군을 이곳 중부지구로 이동 집결시킨 후로는 일부 병력으로서 정찰전을 감행하는 한편 주력은 공격 준비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여 적은 그 주력으로서 한국군 전선을 돌파하여 5월 중으로 아 방어선인 용문산 가평선을 궤멸하고 광주, 여주 선에 진출하려는 기도하에 제2차 춘계공세를 감행하기에 바빴다.
    5월 중순에 이르러 중공군 제63군은 그의 정찰대를 강화시켜 수차에 걸친 가평 동방에서의 북한강 도하에 실패하게 되자 적은 북한강 북안 도하지점 일대에 도하용 자재를 집적함으로써 차기 공세를 위하여 필히 성공하여야 할 도하 준비에 전력을 다 하였다.
    5월 16일 야간 제63군 제187사단의 일부 공격 부대는 북한강 도하에 성공 남진을 계속하였으며, 5월 18일 중공군 제63군 주력은 완전히 공격 준비를 갖추고 제187사단, 제188사단을 1선으로, 제189사단을 예비대로 전개시켜 당일 이른 아침을 기하여 일제 공격을 개시하였다.
    청평댐 방면으로 도하를 기도한 중공군 제188사단은 19일 그의 주력을 완전히 도하시켰으며, 한편 강촌리 서촌리에서 북한강을 도하 남진하던 중공군 제187사단은 계속 사촌리, 마곡리, 파감리 방면으로 또다시 홍천강을 도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