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3 미군은 떠났지만 미국의 이라크 지배는 끝나지 않았다. 정태현 글

2026년 9월 30일, 마지막 미군이 이라크를 떠났다. 미국은 2014년 시작한 이슬람국가(IS) 격퇴작전의 이라크 내 임무가 종료됐다고 설명했다. 바그다드는 이날을 주권 회복의 날로 기념했다. 친이란계 무장조직은 미국 프로젝트의 패배라고 환호했다. 실제로 이날 미군의 철수는 2003년 침공 이후 23년간 이어진 미국의 이라크 내 군사적 주둔이 끝났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군사적 주둔이 끝났다고 2003년 이후 형성된 정치·경제 질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헌법과 정당체계, 석유수입 구조, 달러 결제망, 안보조직은 그대로 남아 있다.

미국의 영향력은 군사적 주둔에서 금융·외교·정보·무기·제재의 형태로 바뀌는 것에 가깝다. 이란과 친이란계 정당·무장조직, 쿠르드 자치정부, 바그다드 중앙정부 사이의 힘의 균형 역시 다시 움직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이라크 철수를 보도하며 다음과 같이 미국 전쟁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했다.
"미국은 공식 군사 작전을 종료하지만, 이라크에 사용할 수 있는 정보·감시 및 기타 역량을 역내에서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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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공과 점령, 무너진 이라크 국가

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침공 승인 없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연계를 침공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2004년 9월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이라크전이 유엔헌장에 부합하지 않는 불법 전쟁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이라크를 해방한다고 했다. 그러나 바그다드에 들어온 미군은 국가의 핵심기관부터 해체했다. 2003년 5월 16일 연합군임시행정처는 폴 브리머의 명령으로 바트당 숙청을 시작했고, 5월 23일에는 이라크군과 국방부, 정보기관 등 국가안보기구를 해산했다.

수십만 명의 군인과 공무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국가가 사라진 자리는 저항조직과 종파 민병대가 채웠다.
사담 후세인의 독재를 무너뜨리는 것과 국가 자체를 해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미국은 새로운 민주국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점령당국이 설계한 정치질서를 이식했다.

시아파와 쿠르드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권력연합이 만들어졌고, 수니파 아랍 사회는 바트당과 군대 해체를 거치면서 공공기관에서 밀려났다. 이라크 정치는 국민의 사회적 요구보다 종파와 민족별 권력배분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정당과 민병대, 외부 후원국으로 권력이 분산되면서 국가는 더욱 취약해졌다.

폭력은 확대됐다. 수니파 지역에서는 미군 점령과 시아파 중심의 새 정부에 맞선 무장투쟁이 벌어졌고, 시아파 지역에서도 미군과 경쟁하는 민병대가 성장했다. 2006년 사마라의 알 아스카리 사원 폭파 이후 이라크는 사실상 종파 내전으로 빠져들었다.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는 이 혼란 속에서 성장했고 훗날 이슬람국가(IS)로 이어졌다.

브라운대학 전쟁비용 프로젝트는 2003년 이후 이라크와 시리아 전쟁의 비용을 수조 달러 규모로 추산한다. 전쟁으로 직접 발생한 사망뿐 아니라 병원과 상수도, 전력망, 교육기관의 붕괴에 따른 질병과 빈곤, 실업과 이주 역시 전쟁의 장기적 결과로 남았다.

미국은 이라크를 독재에서 해방하고 시장경제와 자유선거를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점령은 정치제도뿐 아니라 경제질서까지 외부에서 재편하는 과정이었다.

2003년 5월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483호는 이라크 개발기금과 석유수입 관리체계의 새로운 틀을 마련했다. 같은 시기 부시 대통령은 행정명령 13303호를 통해 이라크 개발기금과 이라크 석유 및 석유 판매대금에 대한 압류와 소송 집행을 폭넓게 차단했다.

문제는 점령한 국가가 점령당한 국가의 자산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했느냐는 데 있다. 이라크 석유 판매대금은 국제 금융망을 통해 관리됐고, 달러 거래는 미국 금융체계와 연결됐다. 법적 소유권이 이라크에 있다는 것과 국제 금융망에서 실제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라크가 석유를 팔아 얻은 달러를 해외 수입과 정부지출에 사용하려면 국제은행망과 각종 금융규정을 거쳐야 한다. 이라크 은행이 달러 거래에서 배제되면 국제무역 수행에 상당한 제약이 생긴다. 미국의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기업과 개인 역시 국제 금융망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2026년 4월 미국이 이라크로 향하던 약 4억5천만~5억 달러 규모의 현금 수송을 중단한 사건은 이러한 구조가 오늘날에도 갖는 의미를 보여준다. 당시 조치는 이란 연계 무장조직에 대한 압박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후 7월 일부 달러 수송이 재개됐지만, 이 사건은 이라크의 석유수입과 달러 유통이 미국 금융체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다시 드러냈다.

경제질서 재편은 석유수입 관리에 그치지 않았다. 연합군임시행정처 명령 39호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이라크 기업의 100퍼센트 소유를 허용하고 투자수익의 국외 이전도 허용했다. 점령군은 이라크의 국유경제를 빠르게 시장경제로 전환하려 했다. 전쟁으로 무너진 도로와 전력망은 거대한 재건시장이 됐고, 국가기능이 약화된 자리를 사설 경비업체와 외국인 계약업체가 메웠다.

석유생산은 재개되었지만 이라크 경제는 석유수출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산업과 농업의 자립 기반은 약해졌고 공공부문과 정당, 민병대, 외국기업이 석유수입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라크는 세계 주요 미개발 유전 가운데 하나를 보유하고 있으며 걸프와 이란, 시리아, 터키를 잇는 지역의 중심에 있다. 이라크를 장악한다는 것은 석유시장과 걸프 질서, 이란과의 관계, 서아시아의 정치지형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를 점령하면서 서아시아의 질서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바트당과 군대를 해체하면서 시아파 정당과 종교조직이 국가의 중심으로 들어섰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란과 역사적, 종교적, 조직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워싱턴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뒤 이라크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이라크전의 가장 큰 역설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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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수했던 미군은 왜 다시 돌아왔나

2003년 침공 이후 미군의 본격적인 철수는 2011년 12월 18일 이뤄졌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해 10월 말까지 모든 미군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12월 마지막 부대가 쿠웨이트 국경을 넘었다. 미국은 이를 이라크전의 종료로 규정했다.

그러나 약 2년 반 뒤인 2014년 6월, 이슬람국가가 모술을 점령하고 이라크 북부와 서부를 급속히 장악하자 미국은 다시 군대를 보냈다. 이번에는 이슬람국가 격퇴를 명분으로 한 국제연합군의 일원이었다.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가 2014년 6월 국민 동원을 촉구하는 파트와를 발표하면서 시아파 민병대가 대규모로 결집했다. 이 조직들은 인민동원군으로 통합됐고, 2016년 이라크 의회는 인민동원군을 국가 안보체계의 일부로 인정했다. 이라크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규군과 이란의 지원을 받은 무장조직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미국은 이슬람국가를 격퇴하기 위해 다시 군사력을 투입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라크의 안보질서는 더욱 복잡해졌다. 미국은 카타이브 헤즈볼라와 하라카트 헤즈볼라 알누자바 등을 이란 연계 무장조직으로 규정했다. 이들 조직은 자신들이 이슬람국가와 싸워 이라크를 지킨 저항세력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들은 자체 지휘체계와 경제망을 유지하고 국가기관에 압력을 행사하며 정치적 경쟁자와 시민운동을 폭력으로 억압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문제는 이라크가 미국과 이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은 정규군과 무기, 정보, 금융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란은 정당과 성직자, 민병대, 국경무역을 통해 영향력을 넓혔다. 이라크 정부는 두 외부세력 사이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이라크는 미국과 이란의 경쟁이 겹치는 공간이 되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가자지대 학살 이후 충돌은 더욱 거칠어졌다. 이라크의 친저항계 무장조직은 미군 기지와 미국 관련 시설을 공격했고 미국은 이를 이란과 연계된 공격으로 규정했다. 무장조직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개입한다고 비판했다. 이라크 정부는 미국의 공격 중단 요구와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국내 정치권 사이에서 압박을 받았다.

2026년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이 구조를 더욱 악화시켰다. 미군 기지는 이란 연계 무장조직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미국은 방공과 기지방어, 보복공격의 부담을 안았다. 이라크 정부 역시 자국 영토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미군 주둔이 이슬람국가 억제보다 이란과의 전쟁을 위한 전초기지라는 인식이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과 이라크가 2024년 이미 2026년까지의 철수 일정에 합의한 상황에서 이란 전쟁은 워싱턴이 병력을 계속 남겨둘 비용과 명분을 다시 계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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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왜 23년 만에 이라크를 떠나는가

미국은 패배해서 이라크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승리해서 떠나는 것도 아니다. 이라크에 대규모 지상군을 계속 주둔시킬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줄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라크 정규군을 어느 정도 훈련시켰고 이슬람국가는 영토를 잃었다. 그러나 친이란계 무장조직은 해체되지 않았고 미군이 남는다고 이라크의 정치질서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도 없었다. 주둔은 계속해서 공격과 보복, 사상자와 반미 여론을 불러왔다.

미국 세계전략의 변화도 중요하다. 미국은 중국을 장기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인도태평양에 군사·경제 자원을 집중시키는 중이다. 러시아와의 경쟁 역시 유럽과 서아시아에 부담을 준다. 모든 지역에 대규모 지상군을 배치하던 시대는 끝났다. 워싱턴은 동맹국과 파트너에게 재래식 방어의 책임을 떠넘기면서 핵전력과 장거리타격, 우주, 사이버, 정보, 금융, 제재에 집중하려 한다.

이라크는 이러한 전략 변화가 먼저 나타나는 공간이다. 20년 넘게 이어진 전쟁은 미국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남겼다. 이라크를 계속 점령하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장기적 경쟁에 투입할 자원을 잠식당한다. 때문에 이라크 철군은 미국의 세계전략을 바꾸는 선택이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군대를 줄인다고 미국의 서아시아 전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위험하고 비용이 큰 상설 지상군 주둔을 줄이는 대신, 금융과 외교, 정보와 무기, 장거리 군사력을 통해 더 넓은 지역에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 이라크 철수는 미국이 힘을 포기하는 장면이 아니라, 힘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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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를 빼고 금융과 정보로 남는 미국

미군이 떠났다면 미국도 이라크를 떠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대규모 지상군을 철수하는 동시에 외교·정보·금융·무기체계와 같은 다른 수단을 유지할 수 있다.

2026년 4월 미국이 이라크행 현금 달러 수송을 중단한 사건은 그 한 사례다. 당시 중단된 것은 이라크 석유수입 전체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이라크 중앙은행으로 보내던 실물 달러 현금의 일부였다. 전자적 무역결제 전체가 중단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이라크 정부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이후 일부 달러 수송은 재개되었다.

이라크가 석유를 팔아 얻는 돈의 법적 소유권은 이라크에 있다. 그러나 국제시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는 달러와 국제은행망이라는 관문이 존재한다.
미국 금융체계와 국제 금융규칙의 영향력이 큰 만큼 이라크의 경제주권 역시 군사주권과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물론 이것이 미국이 이라크의 모든 경제활동을 직접 통제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라크 정부와 중앙은행에도 자체적인 정책수단이 있고 대부분의 달러 거래가 정상적인 금융망을 통해 이뤄진다.

중요한 것은 통제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2003년 미국은 군대를 앞세워 이라크에 들어왔다. 오늘날에는 군대가 빠진 뒤에도 금융과 제재, 외교와 정보, 무기와 안보협력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유지된다.

한편 이라크 정부는 미군 철수 날짜에 맞춰 무장조직의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외국군이 떠나는 동시에 국내 무장조직을 국가 통제 아래 두어야 국가가 무력 사용의 독점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강경파 무장조직은 무장해제를 거부했다. 카타이브 헤즈볼라와 알누자바 등은 미군 철수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의 정보와 영향력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먼저 무기를 내려놓을 수 없다는 논리다.

정부는 무장조직의 국가 통합과 무장해제를 둘러싼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2027년 6월 30일까지 단계적으로 무장조직을 국가 안보체계에 통합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라크가 풀어야 할 문제는 단지 외국군의 철수로 해결되지 않는다. 국가가 군사력과 금융, 외교와 국경, 정보와 자원을 얼마나 독자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가 더 근본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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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철수가 한반도에 던지는 질문

이라크의 이번 대규모 미군 철수를 미국의 세계전략이라는 더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모든 나라에 대규모 지상군을 장기간 주둔시키는 방식을 줄이는 동시에 동맹과 파트너가 재래식 방어의 더 많은 부분을 맡도록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핵전력과 장거리타격, 우주·사이버·정보, 금융과 제재 등 전략적 수단을 계속 보유한다.

미군은 떠났으나 미국은 무기와 훈련, 정보협력, 외교관계, 금융망을 통해 이라크와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 미군 철수가 곧 미국의 서아시아 정책 전체의 철수를 의미하지 않는 이유다.

한국도 이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군이 재래식 방어의 책임을 더 맡고 미국은 핵·정보·우주·장거리타격·전략자산과 역내 작전능력을 유지하는 방식은 미국이 지상군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전략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구조와 맞닿아 있다.

물론 한국과 이라크의 상황이 같지는 않다. 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제도화된 연합방위체계를 갖고 있으며, 한반도는 이라크와 전혀 다른 안보환경에 놓여 있다. 이라크의 철수 경험을 한국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미국의 병력 규모와 주둔 형태가 바뀐다고 미국의 전략적 영향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주권 회복의 중요한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이라크의 경험은 군사적 형태의 변화와 실질적인 전략적 자율성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되더라도 핵우산과 정보·우주·장거리타격 능력, 연합방위체계 등 핵심 군사역량에 대한 의존관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따라 실제 안보 의사결정의 범위는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명칭이나 형식만이 아니다. 누가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군사적 결정을 지원하는 핵심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누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가.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를 함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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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가 떠났다고 주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9월 30일 미군 철수 이후의 이라크에 질문을 던져본다.
이라크의 무기는 누구의 지휘 아래 놓이는가.
이라크의 석유수입은 실제로 누구의 통제 아래 움직이는가.
이라크 정부는 스스로 국가의 외교와 안보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가.
미군이 떠난 뒤에도 미국은 금융과 정보, 외교와 무기를 통해 이라크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9월 30일은 분명 중요한 날이다. 2003년 침공 이후 이라크에 들어왔던 미군이 다시 이라크 영토를 떠났다. 이라크 정부가 이를 주권의 날로 기념하는 것도 그만큼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군의 철수와 외부 영향력의 종식은 같은 말이 아니다.

진정한 주권은 외국군이 국경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가 자신의 영토와 군대, 자원과 금융, 외교와 경제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라크의 진정한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히려 이제부터 이라크가 누구의 돈으로 무엇을 사고, 누구의 지휘 아래 군대가 움직이며, 누구의 압박 없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지가 시험대에 오른다.

외국 군대가 떠나는 것만으로 주권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이라크만의 이야기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