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6 정동영의 군사분계선 획정제의의 모순과 조선의 거부입장에 대해, 정태현 글
김여정 조선로동당 총무부장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군사분계선(MDL) 대화 제의에 대해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망상”이자 “일방적인 넋두리”라고 일축했다. 10월 2일 정 장관은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를 계기로, 남과 북 그리고 유엔군사령부가 인식하는 경계선의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조선측은 이를 군사주권에 대한 간섭으로 규정하며 접촉 가능성 자체를 차단했다. 김여정 부장은 “회담의 방법으로 국경선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주권행사, 즉 힘의 사용으로 우리의 주권 경계선을 긋는다”고 말했다. 자칫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위험은 한국 정부가 스스로 만든 불신의 구조에서 시작되었다.
한국과 조선, 유엔군사령부의 군사분계선을 측정하는 기준과 위치는 서로 다르다고 한다. 과거 DMZ에 설치되었던 1,292개의 표지물 가운데 약 80개만 남아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군인이 순찰을 돌고, 작업자가 철책을 보수하고, 민간인이 접경지역에서 생활하는 경계선의 불확실성은 언제든 폭발과 사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실이다. 정 장관이 “적어도 군사분계선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측정하는 일을, 소통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요구한 것이다.
허나 정부의 제안에는 근본적 모순이 있다. 대화를 제안하면서도 북측에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대가 군사주권 문제로 규정하는 사안에 대해 사과 요구와 대화 제의를 동시에 내놓고 곧바로 협상의 문이 열릴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기만이다. 정동영 장관은 대북 확성기 재개 주장에 대해서도 “위험천만한 생각”이라며 반대했으나 확성기만 멈춘다고 조선측이 수년간 쌓인 한국의 적대행위를 잊지는 않는다.
“한국과의 대면은 그 자체가 악몽”이라며 남북 접촉의 작은 공간조차 허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힘의 사용으로 주권 경계선을 긋는다”는 표현은 더욱 섬뜩하다.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만들어진 휴전선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정전 상태일 뿐이다. 휴전선은 말 그대로 어느 한쪽의 주권을 확인해 주는 국경선이 아니라, 전쟁을 잠시 멈춘 임시 경계다. 그 선을 힘으로 다시 그리겠다는 말은 결국 정전체제를 끝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남북관계가 여기까지 무너진 데에는 문재인-윤석열-이재명으로 이어진 정부들의 이중적 대북정책이 크게 작용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이 함께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민족은 철도와 도로 연결,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 재개, 군사적 긴장 완화까지 기대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입으로만 "평화"를 외칠 뿐, 9.19 군사협정으로 군축을 약속하고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군사비를 증강했다. 대북제재를 유지하고 어떠한 남북교류도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조선은 문재인에 대해 입에는 꿀을 발랐으나 품 속에 칼을 품었다(구밀복검)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 불신 위에 더 노골적인 적대의 구조를 세웠다.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의 강화, 확장억제의 확대, 대북 압박 노선을 본격적으로 재가동했다. 심지어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키며 전쟁까지 도발했다. 조선이 도발에 움직이지 않자 전시상황에 발령하는 계엄령을 내렸다. 노상원의 작전수첩에 전시를 상정한 국내 반대세력의 제거 계획이 구체적으로 적혀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재명 역시 이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평화와 소통을 말한다면 먼저 전임 정부들이 남긴 모순을 따라서는 안된다. 그러나 대화를 제안하면서도 최대규모의 전쟁연습을 진행하고, 한미 군사동맹의 대북 압박 구조는 그대로 유지 중이다. 마치 업그레이드된 문재인을 보는 듯 하다. 조선측에 사과와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신뢰가 돌아오지 않는다.
“조한 사이의 접촉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는 사소한 공간이나 여지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관계가 경직된 지금의 현실은, 조선측의 폐쇄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수십 년간 반복된 군사적 위협, 제재, 정치적 배신이 남긴 결과다.
조선에게 있어 한국은 더이상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미국의 군사전략에 편승하는 위협일 뿐이다. 조선이 남북관계를 통일의 문제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의 관계로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데에는 조선의 선택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그 선택을 되돌리기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는가. 압박을 강화하면서 대화를 기다리는 방식은 문을 잠근 채 상대에게 열쇠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군사분계선 문제는 특히 이런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엄밀히 말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중국인민지원군, 유엔군사령부다. 한국이 정전협정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MDL 문제는 남북의 협의로 해결하지 못한다. 유엔군사령부라는 기만적인 이름 아래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 군사질서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동영이 스스로 남과 북, 유엔사의 측정선이 다르다고 인정했다면, 문제의 해법도 그 세 주체의 관계를 까놓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유엔사의 역할과 미국의 군사적 지배 구조를 거론하지 않은 채, 조선의 비협조만을 문제 삼으며 기만적인 대국민 선전전을 진행한다.
평화를 말하면서 압박을 유지하고, 화해를 말하면서 군사적 우위를 강화하고, 대화를 제안하면서 상대의 굴복을 기다리는 정책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조선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