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19 과거 유럽 사민주의를 통해서 본 한국 시민단체의 반동성 문제

프랑스의 혁명적 소요사태를 보면서 마음이 답답해서 다시 글을 올린다.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제시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칭 진보세력의 반동성에 대한 문제는 유럽에서도 있었던 문제이다. 필자가 한국의 시민단체가 반동성을 띠고 있다고 평가한 것은 그들과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유럽의 사민주의 운동에서 드러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글을 쓰면서 분명하게 밝힐 것은 필자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필자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신민족주의자다. 필자는 신민족주의자로서 공동체를 우리 삶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필자의 이념적 지향을 규정하자면 아마도 사회자본주의자나 자본사회주의자 정도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반동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포스트를 했는데 그에 관한 의구심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진보세력의 우파가 반동적 경향으로 넘어간 경우는 적지 않다. 그 예를 제시하고자 한다.
1920년대 지노비예프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부르주아지의 좌익이자 파시즘의 좌익이라는 평가를 한적이 있다. 그 내용을 아래와 같다.

"노동운동의 우익에서 나온 사회민주주의잗르은 지금 변화의 과정에 있다. 그들은 갈 수록 부르즈아지의 좌익, 곳에 따라서는 파시즘의 좌익으로 까지 바뀌었다. 바로 이것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파시즘의 승리 운운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이야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파시즘과 사회민주주의는 (적어도 그 지도자에 관한 한)근대 자본주의의 오른손과 왼손이다. "

필자가 한국의 소위 사회시민단체, 특히 이재명 정권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동성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한국에 반미를 주장하는 사회시민단체 특히 김민석의 형 김민웅이 이끄는 촛불행동과 같은 조직이 위장한 매판세력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그들은 한국 대중의 자발성을 훼손하고 오도하며 그들의 힘이 가진 잠재력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가두리다. 기득권과 외세에 대한 반발과 저항을 일정한 농도로 희석하는 역할을 하는 반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상당수 친이재명, 혹은 참칭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는 기득권의 옹호를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반동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노비예프가 평가했던 1920년대 초중반의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너무나 유사한 반동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들이 변혁적 운동의 사령부로서 역할을 자임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자발적 혁신을 위한 변동은 불가능한 것이다. 대중이 이런 현실을 분명하게 파악해야 이런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

100년도 이전에 이미 지노비예프를 위시한 공산당 이론가들은 소위 사민주의자들의 반동적 성격을 분명하게 간파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소위 상당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는 명백한 반동적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시민과 김어준 같은 자는 파시즘의 좌익이 아니라 파시즘의 중도 혹은 파시즘의 우익에 해당하는 위치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재명은 명백하게 극우적 경향을 띠고 있다.

필자가 지금의 이재명의 정책을 옹호하는 자들을 반동적 경향을 지니고 있는 위선자라고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