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3 영화 암살자와 반동적 박정희 소비, 김호 글

자연과 직접 대면하고 살아가며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동물과 달리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남의 도움이나 관계없이 하루도 존재하지 못한다.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부정한 사건에 대해서 자기를 숨기는 데 천부적인 감각을 보이는 이유이다. 순간을 모면하려고 방귀 낀 놈이 성질내듯이 남을 탓하거나 동정을 호소한다.

문제는 이로써 사회적 공기가 혼탁해진다는 것이다. 성질낸 놈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태가 되어 여론이 혼탁해진다. 방귀 낀 놈이 갈수록 더 뻔뻔해질 수밖에 이유이다. 니체는 부끄러움은 증오를 낳는다고 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성격과 삶을 소유냐 존재냐로 구분했다. 소유적 인간들은 타자의 죽음조차 자신을 향한 욕망으로 소비한다. 공익을 가장하지만 결국 타자의 죽음을 팔아 이기적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진보팔이와 박정희에 대한 민주팔이가 그렇다. 공익을 가장해 자신을 향한 사적 욕망을 교묘하게 숨기다 내심이 드러나면 뻔뻔해진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에 대한 반응은 증오 또는 성찰이다. 남 탓을 하면 되는 증오와 달리

성찰은 자신을 대면하고 넘어서는 용기와 상대를 가로지르는 창조성이 필요하다.

존재적 삶 즉 공익적 삶이 아닌 “소유적 실존양식에 젖어 있는 학생들은 오로지 한가지 목표를 겨눈다. ‘학습한 것’을 기억 속에 새기거나 기록을 용의주도하게 보관함으로써 굳게 지키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창건하거나 생산할 필요가 없다. 사실상 ‘소유형’ 인간은 자신의 주제에 관한 새로운 사상이나 관념과 맞닥뜨리면 불안해 한다. 그럴 것이, 새로운 것은 그가 수집하고 확보한 기존 정보를 희미하게끔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52쪽]

국가보안법의 악용을 비판하려 영화 암살자를 타고 '친미극우파시스트'라며 박정희를 비난하는 시대와 동떨어진 인간들이 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백년전 그 CIA에 의해서 죽은 박정희가 아니라 여전히 그들과 협력하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미국산 앵무새들 때문이다. 맹목적으로 그들을 빨아대던 자신들의 초라한 몰골 때문이다. 소유형 인간들은 한 뼘 과거의 기억에 온전히 얽매여서 그것을 인생의 전부로 안고 살아간다. 바닥이 드러날 만하면 부정적 박정희를 소환하여 민주를 파는 작자들로 인해 오히려 사회적 공기는 혼탁해지고 지성은 마비된다. ​

자신을 향한 용의주도한 기억만을 선택적으로 나불거리는 이들과 달리 정작 그 피해를 온몸으로 겪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지내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부여한 것에 대해선 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근대화를 이룩해 국가에 공헌했다."고 했다. 그는 6.15를 이끌었다. 6.15의 핵심은 결국 경제협력이다.

새로운 시대 불안에 휩싸인 이들은 이란파병도 나라를 팔아먹는 관세협정도 국민의힘이 원흉이라고 굳게 믿고 여론을 호도한다. 오히려 역정을 내며 파병강요, 내정간섭 미국을 반대하고 싸운다며 파병과 협정을 추진한 주체 즉 주어(나경원)를 생략하고 반복한다. 이재명에 대한 감정적 관계로 주어를 생략하고 비판하지 못하는 문제와 별개로 여론을 호도해서 본질이 가려지면 저들이 비판해 마지않는 친미를 자신들이 초래하게 된다는 현실을 외면한다. 이로써 저들의 반미는 미국산 앵무새가 된다. 싸우면서 닮는다. 민중을 개돼지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선택적이고 용의주도한 기억력이다.

평화와 민주를 파는 진영에서 지금까지 CIA에 의해 암살당한 박정희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박정희를 증오한 손쉬운 결과가 ‘암살자’의 소비라면 제국에 의해 암살당한 박정희를 적극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바로 성찰의 부재이자 비겁이다.

비겁은 반동을 자초한다! 자신을 향한 비겁과 세상을 향한 증오가 반동을 부르는 말세적 세월이다.

하지만 이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