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6 미국산 앵무새 NL의 몰락과 박정희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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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말과 글로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말이 혼탁해지면 사회가 혼탁해진다. 조선과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는 말이 가진 신뢰의 차이이다. 조선의 말은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한국의 말은 교묘하고 비겁하게 비틀어 자신을 속이고 대중을 기만한다. 그게 바로 여론으로 만들어지는 대중민주주의의 민낯이자 이성과 진실이 아닌 광대극이 판치는 이유이다.

“언론의 자유는 ‘낡은’ 제약과의 싸움에서 거둔 중요한 승리이기는 하지만, 근대인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으며, 근대인은 독창적으로,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도 잊고 있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119쪽]

진영에 젖은 ‘언론의 자유’를 벗어나 타자의 시선으로서 2026년 10월 2일 조선중앙통신 발 김여정 부장의 담화 발표를 살펴보자. “적은 역시 적이다. 이것이 서울의 새로운 자작 광대극을 통해 우리가 다시 한번 내리게 되는 중대 결론이다…. 세상을 어지럽게 형상해 놓고 정의로운 주역을 맡겠다는 심산인듯하다. 주역과 단역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정의로운 배역’ 연기로 인기를 많이 끌기 바란다”

2018년 9월 정상회담을 앞둔 8월 9일, 오로지 남북경제협력사업을 하던 필자에 대한 간첩조작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정의로운 배역’ 연기로 인기를 끌고 싶고 공동성명 발표 이후의 책임은 지기 싫은 미국산 앵무새가 미국의 대북제재를 내세운 책임회피로, 선제적으로 창작한 자작 광대극이었다. “지금 리재명과 그의 측근들이 조한사이의 소통공간을 마련해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있는데 대해 모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것이 이번 자작극의 ‘창작경위’이며 ‘주제’이고 ‘진의도’이라고 찍어서 말하였다.”와 같은 이유이다. 그들에게 남북 관계는 누군가를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인기를 위해 벌이는 광대극일 뿐이다.

김여정의 말에서 우리가 살필 것은 상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신체적인 반응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한국이라는 족속들을 의식하는 것조차 소름이 끼친다...정말로 이제는 지루하고 끔찍하고 지겹다.” 조선의 말에서 이러한 역겨운 반응은 박근혜 때까지는 부재했다. 미국산 앵무새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나온 반응이며 이재명 정부에서 반복되는 수사이다. 나쁜 놈이 아닌 착한 척하는 나쁜 놈들에 대한 신체적인 반응이다. 즉 박근혜때까지는 남과북에서 말은 존재했다는 것이다.

착한 척하는 나쁜 놈들은 관세협정과 이란파병에 대해서도 문재인과 이재명이라는 주어를 상실한 채 정의로운 척 친북과 반미를 자처한다. 이로써 이란파병과 관세협정의 본질이 가려진다. 제국에 천문학적으로 퍼주며 동족과는 대결을 조장하는 그런 자들과, 맹목적으로 그들과 몰려다니는 무리와 상종하고 싶겠는가? “적은 역시 적이다.” 여전히 모르는 척하는가? 카포(kapo)는 나치 수용소에서 동족을 감시하고 탄압하던 자들을 말한다. 결국 돌아온 것은 늦은 죽음뿐이었지만 그들은 나치보다도 더 악랄하게 동족을 유린하고 지배하려 했다. 한미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그러하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뼈아픈 진실이 노출될 위험에 처할 때 본능적으로 이를 부정하는 저항현상이 나타난다. 영화 암살자와 더불어 사회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죽은 박정희에 대한 과도한 증오가 그렇다. 박정희 비난의 핵심 요지는 첫째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인권을 짓밟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친일 매국노라는 것이다. 나와 무관한 먼 과거의 인권을 말하는 것이 지금 처한 구체적인 현실을 살피는 것보다 쉬운 법이다. 자신이 내뱉은 증오만큼 현실과 실천을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에 대한 과도한 증오는 이성을 마비시켜 자신의 치부를 가린다.

첫째, 이란파병과 매국적 관세협정을 국힘당이 주도했는가? 마찬가지로 분단을 조장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보안법을 여전히 쥐고 있는 것은 민주당인가 국민의힘인가? 저들은 이란파병과 관세협정을 비판하며 ‘파병반대! 내란세력 퇴치’라고 하듯이 국보법 철폐에 대해서도 ‘국힘당을 박살내자’와 같은 광신적인 주장을 반복한다. 무릇 모든 광신적 태도는 다른 충동, 흔히 그것과는 정반대의 충동을 감추려는 태도라는 의심을 낳는다. 자유의 이면에 게으른 독재가 비춘다.

박정희가 독재하고 국보법을 악용해 간첩사건을 일으킨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100년 전 동백림사건 등을 소환하며 죽은 박정희에게 울분을 토하는 이들은 정작 살아있는 대통령 문재인과 민정수석 조국이 벌인 간첩조작사건에 대해서는 그들을 탓하기는커녕 피해자에게 피해의식이 빠졌다고 손가락질했다. 그들에 의한 조작 간첩사건으로 구속됐던 당사자인 필자의 기억으로 문재인과 조국을 비판한 세력은 단 하나도 없었다. 죽은 박정희에 대한 증오가 넘치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들로 인해 십수 년 이상을 공들인 남북경제협력사업은 망했다. 미국산 앵무새를 빨던 자들과 진보당은 여전히 그 조국과 역겨운 선거연대를 주장했다.

사실조차 선택적으로 까먹는 족속들이라 박정희는 탓하고 문재인은 탓하지 않으면서 ‘법’이 문제라고 한다면 국보법을 여전히 쥐고 있는 것은 죽은 박정희가 아니라 그를 비난해 마지않는 민주당과 그 추종 세력들이다. 통진당 해체사건도 동일하다. 영화 암살자에 쏟아붓는 울분과 전투력이면 전가의 보도처럼 내미는 적폐의 눈치나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뒤로하고 국가보안법이 백만번은 사라졌을 것이다. 즉 자신의 욕망을 향한 가짜 증오라는 것이다. 독재를 비난하지만 결국 그 국보법을 소유하고 악용하며 아집에 묶여 있는 쪽은 민주당이다. 피학증세도 아니고 진보당은 그들과 연대해서 무얼 얻었는가? 하물며 조국이야!

“자신의 자아에 집착하는 만큼, 그것에 비례해서 인간의 자유는 제한받는다. 자신의 자아, 아집에 묶여 있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나아가는 길을 스스로 방해해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충분한 자기실현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존재냐 소유냐 99쪽]

빗나간 증오와 비례해서 ‘인간의 자유’는 제한받는다. 이란파병 반대와 관세협정 반대는 그 연장이다. 그들은 주어를 생략한 채 눈먼 증오를 쏟아부으며 사태의 본질을 가린다.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 즉 소유적 인간은 자신의 관점과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로만 현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지배하고자 한다. 단 박정희식 독재가 아닌 김여정에 의하면 ‘광대 짓’으로 니체에 의하면 ‘병신 짓’으로!

김여정의 역겨움은 이를 비추고 있다. 김정일과 만나 직접 대담하고 중국의 반일 전승일에 시진핑 푸틴과 더불어 천안문 광장에 섰던 그리고 그 결과로써 제국에 의해 미운털이 박혀 탄핵당한 박근혜가 박정희 독재와 인권유린 운운하는 자들을 향해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고 던져버리면 진보팔이의 위선과 태극기 부대의 어리석음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김대중을 탄압했던 독재의 과오를 딛고 박정희는 호남과 더불어 민족적으로 부활할 것이다. 한미동맹과 영남패권주의에 중독된 신자유주의 똘마니 민주당은 절대 불가능한 발상이지만 1%라도 그 가능성을 가진 위정자가 있다면 박근혜가 유일하다. 이로써 영호남이 화해하고 박정희와 김일성을 가로지르는 ‘신민족주의’가 탄생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누구에게 그 손을 내밀 것인가?

둘째, 반민족행위에 대해서 살펴보자. 박정희의 친일을 비난하는 자들이 대부분 한미동맹을 혈맹으로 모시고 사는 친미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CIA에 암살당한 박정희와 주한미군 사령관 브런슨을 만나 행복한 웃음을 터뜨리는 미국산 앵무새 중 누가 반민족주의자란 말인가? 미국산 앵무새를 비난할 게 없다면 그 입으로 박정희는 비난해 무엇하는가? 친일이 매국이면 친미는 애국이란 말인가? 죽은 박정희를 비난하는 자들이 유독 反공동체주의인 미국의 금융자본주의에 중독되어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인간들이라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들은 그 범죄를 가리려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해체하려 한다. 검찰개혁이 그렇고 강탈적인 관세협정이 그렇다!

이상 그들의 논리로 살펴본다 해도 남북 관계 개선과 인권을 주장하는 NL은 철저하게 타락해서 그 어떤 개선의 정이 불가능한 현실이다. 박정희와 달리 몰락의 가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NL의 가치는 차라리 보수에서 치솟아야 한다. NL, 즉 민족해방이라는 의미 자체가 보수의 가치이다.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의식의 일부는 바다와 같은 무의식을 반영한다. 김일성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선언한 남로당 출신 박정희를 비난하는 미국산 앵무새들이나 반공과 반북을 팔아먹는 국민의힘과 태극기 부대가 진보거나 보수겠는가?

“지식이 도그마의 특성을 취해서는 안 된다. 도그마는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소유적 실존양식에 속해 있다. 존재양식에서의 지식은 곧 파고드는 사유행위 그 자체이다.”처럼 시대정신은 도그마를 벗어나 삶으로 파고들어 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한 약탈자본에 의해 국가가 조각조각 해체되는 시기에 필요한 민족정신은 친북과 반미를 자처하지만, 상대로부터 미국산 앵무새라고 비난받는 제국의 전략 자산이 아니라 CIA에 의해 암살당한 박정희다.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친선을 강조하듯이 한국에서 민족과 국익을 무엇보다 앞세우는 위정자가 있다면 남북관계는 풀려갔을 것이다. 결국 제국과 속국의 차이는 국익 즉 주권이다. 박정희가 암살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경제개발을 이룩한 독재자 박정희는 실패했지만, 독재자 김정은이 제국에 맞서는 힘은 결국 핵무력 때문이다. 하지만 제국을 넘지 못한 반쪽의 여정이다. 각자 핵과 경제를 앞세운 반쪽을 서로가 가로질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바로 ‘신민족주의’다. 그런데 이쪽저쪽 반쪽이들은 앞다퉈 한미동맹 아래 조선의 비핵화를 말한다. 고장 나 고쳐 쓰지 못할 철 지난 미국산 앵무새의 넋두리이자 성조기를 흔드는 정신 나간 노예들의 실존양식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암살자와 더불어 증오와 원한으로 남을지 아버지의 권위를 넘어 자유를 향한 여정에서 자신과 조국의 운명을 바꿀지 개인 박근혜의 시간이다. 새롭게 탄생할 New Liberation, NL의 시간이다.

‘너 자신을 알라.’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