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4 분열과 증오를 조장하는자가 매국노다. 육영수? 그럼 노무현은 ?

지정학적 대격변에 대응하기 위해 신민족청년주의를 구상하면서 제1차 과업으로 한국내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는 것으로 정해보았다. 한국내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지 않고는 남과 북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할 수 없고, 남북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지 않으면, 지정학적 대격변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조선은 지정학적 대격변의 순풍에 올라타기 시작했고, 한국은 지정학적 대격변의 격랑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어떤 나라나 문명이 붕괴될때는 거의 유사한 과정을 겪는다. 극심한 분열과 갈등이다. 극심한 갈등과 분열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치지도자들이 갈등과 분열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정확하게 분열과 갈등으로 인해 국력을 상실하는 과정에 진입했다. 이미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수탈을 당하고 있으며,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이 극심한 분열과 갈등의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10년간 3500억 달러 이상을 미국에 수탈당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이 문제에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국민의힘이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동일한 입장과 태도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해 국민의힘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정신나간 참칭 진보세력도 있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한국이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상호 증오심으로 대중이 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과정에 묘하게도 박정희 문제가 다시 붉거졌다. 영화 ‘암살자’가 박정희가 육영수를 죽였다는 암시를 주었고, 이로 인해 한국사회는 더욱 더 갈등과 분열 그리고 상호 저주와 증오의 구렁텅이로 끌려 들어갔다.

필자는 박정희를 여운형-조봉암을 잇는 신민족청년주의의 계보에 놓았다. 필자가 박정희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한 것은 한국내의 진영과 지역의 통합과 단합을 위해서 였다. 박정희를 재평가하기 위해서는 영남이 호남에 저지른 과오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누가 먼저 시작하는가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주도권의 문제다. 영남이 호남에게 먼저 진지한 반성과 사과를 하고 화해의 손을 내밀면, 앞으로 역사의 주도권은 영남이 더 많이 확보하게 될 것이다. 호남이 먼저 박정희를 재평가하고 손을 내밀면, 호남이 역사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저주와 증오의 굿판을 먼저 치우는 사람이 더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런 당연한 일이 현실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분열과 증오로 이익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분열과 증오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구하려는 자들의 가장 큰 무기는 위선이다. 자신의 잘못과 과오는 외면하고 상대방의 잘못과 과오만 지적하고 증폭시키는 것이 그들의 술책이다.

필자는 그런 위선이 어떻게 벗겨질 것인가를 걱정했다. 그러나 위선은 위선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는 것 같다. 소위 참칭 진보세력들의 박정희를 비난하기 위해 만든 암살자가 이번에는 한동훈의 노무현 부패 폭로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노무현의 죽음을 부활의 연료로 삼았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무현이 박연차로부터 금전을 받은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갑자기 이명박이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글을 중앙일보에 게재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은 노무현을 보호하기 위해 검찰총장을 유임시켰으나,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동훈은 당시 한겨레 그리고 경향이 노무현의 죽음을 요구하는 듯한 기사를 쏟아 냈으며, 지금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노무현을 비난했다는 사실을 들춰냈다.

한동훈이 더불어민주당과 참칭 진보진영의 위선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문제는 한동훈도 위선적인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는 위선과 거짓으로 박근혜를 탄핵했다.

대중은 나뉘어져 이들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다. 한쪽은 박정희가 육영수를 죽였다는 서사를 만들어가면서 대중의 증오를 조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진보세력에 있다고 밝히면서 대중의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말 이렇게 해야 할 일일까? 정치인은 성인이 아니고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완벽하지 않고 잘못을 저지른다. 중국이 지금처럼 미국을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등소평 덕분이라고 하겠다. 등소평은 문혁으로 자신의 자식이 불구의 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장악하고 모택동 격하운동을 주장하는 세력들에게 공7과3이라고 하면서 안고 갔다.

소련은 스탈린이 사망한 다음에 스탈린 격하운동을 일으켰다. 소련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은 후르쇼프가 스탈린 격하운동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중국과 소련이 결정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은 역사적 과오를 정리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런 점은 현재의 한국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사적 통찰을 제시한다. 적어도 죽은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죽은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인 평가에 맡겨야 한다. 살아있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현재의 정치적 법적 평가의 대상이다. 죽은 인물을 소환해서 분열과 증오의 도구로 삼는 것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육영수의 죽음에 대한 의혹보다 더 의심스러운 것은 노무현의 죽음이다. 노무현이 죽음을 맞이할 때, 경호책임자는 주영훈이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을때 경호실장이 바로 그 주영훈이었다. 노무현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할 주영훈을 문재인은 자신의 경호실장으로 삼았다. 필자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문재인이 노무현의 죽음을 사주한 것인가?

육영수를 박정희가 죽였다는 서사보다 노무현을 문재인이 죽였다는 서사가 훨씬 더 그럴 듯하지 않는가? 아마도 조금 더 있으면 노무현을 문재인이 죽였다는 영화나 소설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죽은 자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두는 법이다. 죽은자를 불러내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을 지향할 것인가를 고민할때 필요하다. 필자는 박정희를 소환했다. 그것은 박정희를 통해서 영호남이 통합하고, 박정희와 김일성의 역사적 화해를 통해서 남북통합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역사적 인물 중에서 여운형을 소환한 것은 그가 남북의 분열을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이다. 조봉암을 소환한 것은 정치의 본질이 인민의 삶의 향상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다. 조봉암이 죽임을 당한 것은 그가 추구한 목표가 인민의 삶의 향상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위선은 위선으로 드러난다. 증오는 또다른 증오를 불러 일으킨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과 참칭 진보의 증오와 분열의 굿판이 벌어졌다면, 지금은 국민의힘에서 증오와 분열의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한동훈, 주진우, 이진숙, 나경원, 김민전 같은 자들이 대중의 증오를 조장하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거울효과 때문이 아닌가 한다.

분열과 증오를 조장하는 자는 역사의 범죄자다. 그들은 국가와 민족 인민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사리사욕을 위해 증오와 분열을 조장한다. 그런 분열과 증오는 매국의 불쏘시개가 된다.

과거에는 곧바로 나라를 팔아먹는자가 매국노였지만, 지금은 증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자가 매국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