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25 영호남 화해를 위한 필요조건, 호남 정치의 복원, 객에서 벗어나 주인되기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중국에 이어서 세계 2위이다. 독일과 일본을 합한것 보다 더 많다.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런 소식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주식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만 축제는 열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주주자본주의에 반대한다. 그것은 내가 주장하고 있는 신민족주의의 공동체적 가치와 주주자본주의가 서로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주자본주의란 현대판 지대를 의미한다. 결국 그 지대는 하청업체와 각종 형태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형태만 다르지 봉건영주의 착취나 주주자본주의란 미명하에서 이루어지는 착취의 형태는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권은 사상최대의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내가 저자거리에서 느끼는 이재명에 대한 지지율과 언론에서 발표하는 지지율은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 그것도 엄청난 차이다. 지금 대중은 최악의 경제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이런 위기적 상황이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재명 정권의 위기는 대부분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그것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 의사결정과정에서 당연하게 작동해야 할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이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정당의 의사결정과정은 필연적으로 민주집중제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토의와 논의는 민주적으로 그리고 백화쟁명식으로 전개되어야 하며, 그렇게 결정된 의사결정의 집행은 효율적으로 그리고 중앙집권적인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정책의 대부분은 이재명의 독단 아니면 소위 책임당원의 독단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의사결정에서 민주적인 토의 그리고 백화쟁명적인 토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미 정해놓고 힘으로 밀어부쳤다. 부동산 정책은 이재명이 독단적으로, 그리고 검찰의 수사기능 박탈은 책임당원의 독단을 배경으로 한 친문세격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은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지 않았다. 여기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것은 자살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재명과 책임당원의 독단에 반대한 것은 당외의 전문가들 집단에 불과했다.
이렇게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민주적인 정당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책결정과정에는 완전하게 배제되고, 집행에만 동원되는 소위 ‘관료적 집중제’의 정당이다. 파시즘적 정당, 혹은 독재체제하의 정당에서 흔히 볼수 있는 행태가 더불어민주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관료적 집중제라는 정당의 행태를 백년도 이전에 관찰하고 정리한 그람시의 통찰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백년전에 그람시가 비판했던 파시즘적 정당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들이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불임정당이다. 다음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지금 현재의 중진급 의원 중에서 대통령정도의 무게감을 지닌 자는 아무도 없다. 그것은 그들이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통령만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개헌선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호남지역을 제외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완전하게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중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상당이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런 우려조차 입에 올리지 못한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민주주의는 실종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은 현재 한국이 직면한 위기는 고사하고 현재 자신들이 직면한 위기도 제대로 파악하고 극복하기 어렵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좀비 정당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는 것은 호남의 지지덕분이다. 그러나 호남도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정치상황을 그대로 인내해서는 안된다. 변혁이 필요할 때 바뀌지 않으면 가장 큰 피해자는 호남이 되기 때문이다. 호남은 지금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보수적 양상을 띠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위해서 파시즘적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호남이 이런 볼모의 처지에 빠진 것은, 영남패권주의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식민지는 이중적인 구조를 가진다. 식민지내부의 협조자와 식민지배를 당하는 대상이다. 호남이 영남패권주의의 식민지가 된 것은 식민지내부에서 영남패권세력의 앞잡이 역할을 하면서 그들이 식민지배에 협조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의 식민지배세력은 일제해방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도구였던 친일파와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악랄할 뿐이다. 그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호남은 앞으로도 식민지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남과 호남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각자 지역적인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영남은 자신이 정치세력의 주인이고, 호남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주인이 아니다. 영남이 주인이라면, 호남은 객인 것이다.
필자는 영호남의 화해와 협력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호남이 객이 아닌 주인으로서의 자격을 회복해야 한다. 호남이 주인에서 객이자 도구적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노무현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대북송금특검과 그이후에 치밀하게 이루어진 ‘동교동계 숙청’의 결과였다. 호남은 중앙정치에서 완전하게 소외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86세대중에서 지금껏 살아남은 호남출신 정치인들 그리고 동교동계에서 살아남은 박지원 같은 자들은 영남패권세력의 부역자라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지금 호남은 스스로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호남은 앞으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호남의 각성이 필요한 것이다. 수단에서 목적으로 객에서 주인으로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필자는 영호남의 화해를 한국정치가 추구해야할 제1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호남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제 호남이 해야할 것은 현재의 ‘동교동계’를 재건하는 일이다. 호남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열망을 스스로의 힘으로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기껏해야 도구적 수단으로 자신을 전락시켜서 거기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에 만족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호남의 정치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그것은 오롯이 호남의 몫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인이 되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객으로 살면서 도구적 존재로 만족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