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19 한국에서 프랑스와 같은 사회변동의 불가능성와 소위 시민사회의 반동성, 그리고 자신을 위한 사령부 만들기steemCreated with Sketch.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발생했다. 그것은 현재의 프랑스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고등학생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에서는 누가 가장 약한 고리인가? 청년세대이다. 한국의 청년세대는 두개의 형태로 나뉘어 었다. 여성과 남성이다. 한국의 계급중에서 가장 취약한 계급에 있는 계층은 20대 여성이다. 남성은 그보다 조금 위에 있다. 세대라고 하지만 이들의 계급적 성향은 조금 다른다. 20대 여성의 상태를 절망, 20-30대 남성의 상태를 분노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계엄 선포 이후 우리는 두가지 모습을 주목할 수 있다. 남태령에서 밤샘시위를 할때 주역은 20대의 여성이었다. 법원을 점령했던 것은 20-30대의 남성이었다. 지금 이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재명 정권이후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계층이 20 30 청년계층이었다. 지금 이들은 정확하게 한국사회의 최하 계급구조에 속해있다.

한국에서 노동운동은 더 이상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그저 노동조합의 동원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변해버렸다. 노동자들은 그 안에서 이미 너무나 폭넓은 계급적 분포를 지니고 있으며, 현재 노동조합을 움직이는 힘은 상층 노동자, 즉 부르주아지적 노동자에게 있다. 노동운동은 이제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한국에서 노동운동이 변혁적 의미를 다시 가지려면, 지금과 달리 노동운동이 분화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노동운동은 하층 노동자들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기생적 역할로 퇴행할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만일 사회변혁이 일어난다면 그 주역은 20-30의 청년세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그들이 한국의 가장 취약한 계급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다시 변혁적 운동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남태령에서의 시위에 동원되었고, 법원파괴로 분노를 발산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 20세대의 여성들은 완전히 소모되는 존재로서만 기능했다.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변혁적 움직임이 발생하더라도 이들을 이끌어갈 사령부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령부의 부재보다 훨씬 심각하다. 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하지만 이들이 기득권의 부역자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변혁의 대상은 이재명 정권과 그 정책이다. 이재명은 역대 그 어떤 정권도 하지 못했던 자본과 외세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 천문학적 국부를 유출하고 있다. 이재명은 이미 미국의 수탈에 동의해놓고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이재명이 갑자기 굴종적 사대적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국익이라고 말했다. 마치 그동안 미국과 합의했던 한미투자합의를 뒤집는 것과 같은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오히려 미국에 돈을 보내기 위한 준비를 더 가속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재명의 이런 발언이 나오지 마자 소위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재명의 발언을 고독한 결단이니 하면서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미투자협의가 시작되자 마자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했다. 그 당시 아무도 필자의 발언에 동조하지 않았다. 이재명을 외교천재라고 하는 자들이 넘쳐 났다.

안철수가 SK의 솔리다임 미국상장을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정황적으로 보아 이재명은 최태원과 솔라디움 미국 상장을 논의하고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여기에서 안철수는 이재명보다 훨씬 민족적이고 대중의 이익을 위한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이 자주외교 운운하는 발언을 하자 만자 그동안 조용하게 있었던 시민사회단체들이 갑자기 미국의 수탈에 반대한다는 시위를 조직한다고 나왔다. 나는 이들이 대중의 자발성을 통제하는 가두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 대중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일정한 틀내에서 제어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현재의 한국시민사회의 정체인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이재명 정권을 규탄하고 신을사오적을 처단하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한국의 20대 여성이 남태령에서 영하의 날씨에 시위를 벌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그 과실은 모두 시민사회가 가져가 버렸다. 소위 촛불이란 미명하에 국무총리이자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김민석의 형 김민웅은 오히려 이들의 개혁적 성격을 순치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은 프랑스보다 훨씬 더 모순이 심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같은 분노의 분출이 불가능한 이유는 소위 시민사회단체들이 한국의 분노를 가두리 양식장에 가두어 놓고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필자는 현재 소위 시민단체들이 가장 반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에서 프랑스 학생운동과 같은 동력이 발생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이미 반동적으로 변해버린 시민사회의 가두리 때문이다.

설사 한국에서 이런 정치적 변동이 발생하더라도 그 이후의 결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령부의 부재때문이다. 어떤 운동에서든지 사령부의 역할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조직과 정당은 이런 운동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구하고 대중적 분출을 솜씨 좋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20-30세대가 지금의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자신들의 사령부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