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상황
거반 용문산 전투에서 아군의 강타를 받아 이 지역까지 패퇴한 중공군은 그 동안 시간적인 여유를 얻어 견고한 반영구 진지를 구축하고 각 산병호에 이르기까지 교통호로서 연결되었음을 물론 박격포탄으로도 파괴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유개호 또는 지형지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엄폐호가 능선으로부터 50~60마일 낮은 지대에 이상적으로 구축된 엄폐 진지에는 중공군 제20군 제58사단의 제172단, 특무단, 제174단 그리고 제60사단의 제178단, 제179단 등 약 2개 사단의 병력이 82밀리 박격포 6문, 60밀리 박격포 7문, 기관포 12문의 중화기를 비롯하여 기타 자동화기, 수류탄 등의 충분한 장비를 가지고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적은 제1라 춘계공세로부터 후퇴하는데 있어서 지연전을 기도하는 것이었으며, 아울러 이곳 화천 일대의 고산지대를 계속 확보함으로써 차기 공세를 유리하게 성취시키려는 목적이 있었으며 이를 위한 강력한 방어에 필요할 제반 보급에는 각별히 진력하여 아 항공기의 위협이 없는 천후 불량시를 이용하여 강행되었으므로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으나, 아 항공기의 출격과 맹렬한 포격에 의한 그들의 사기 저하는 면할 길이 없었다.
아군의 상황
미 제7사단 전면에 대치한 적진 643고지에 대하여 연 3일간에 걸쳐 미 제17연대가 맹공을 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엄폐 진지에 의거하여 완강히 저항하는 적의 발악으로 이 고지 점령에 성공하지 못한 미 제17연대는 공격 임무를 아 한국군 제6사단에 넘기도록 명령받아 아 제6사단 예하 제7연대와 교대하였다.
따라서 643고지(CT884250), 887고지(CT895272) 및 취봉(CT899295)을 순차적으로 공격 점령 확보하려는 것이 제7연대의 사명이며 또한 목적이었다. 용문산 전투의 대승리 이래 계속하여 사기 왕성한 제6사단 예하 양중호 대령이 지휘하는 제7연대는 고통스럽고도 치열한 백병전과 상당 수의 인적 희생이 예상되는 전투에 추호도 개념치 않고 장교 140명을 포함한 2,727명의 전원이 우군 포 지원 하에 용약 돌입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좌측은 미 제7사단의 제31연대, 우측은 아 제6사단의 제19연대와 서로 보조를 맞추어 진출하였는데 다만 미 제31연대의 진출이 늦어 누차 아 연대 진출에 지장을 초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