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ole
이 자리에서 내 역할은 도대체 무엇일까? 요즘 들어 나의 역할에 대해서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게 된다. 여기 와서 확실히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 그만큼 논문이나 여러 성과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학술적으로 커리어가 쌓이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성과들이 과연 정말 내 것일까?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내 자리에 있었다면 충분히 비슷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특별히 어떤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인지, 아니면 그저 주어진 프로젝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온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이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것들을 계속 익히고 있다. 그러다 보니 넓게 보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얇은 지식들만 계속 쌓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과는 쌓이고 있는데, 과연 나는 그 성과를 만들어낸 분야들에 대해 충분히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남들이 보기에는 꽤 괜찮다고 생각할 만한 곳에 논문들이 출간되고 있고, 학생 때도 그랬고 연구원으로 직업을 얻은 지금도 학술적인 커리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쓴 논문들을 하나씩 돌아보면서, 이것이 정말 totally new and breakthrough result였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성과가 의미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명히 많은 일을 했고, 그만큼 결과도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것의 절반 정도는 더 일이 쌓일 것 같다. 어쩌면 앞으로 1년 동안도 지금과 비슷하게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논문과 성과를 만들어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과가 쌓이는 것과 내가 그 다양한 분야를 정말 잘 이해하고 있는가는 또 다른 이야기다. 일단 적어도 1년 정도는 더 이곳에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내가 여기 있는 동안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가능한 한 많이 물어보라고 이야기해두었다. 나 역시 그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보다 내가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크게 남았다. 성과는 쌓이고 있다. 커리어도 쌓이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쌓고 있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이런저런 고민할 시간도 없이 여기 온 지 1년이 지났다. 내년의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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