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이 내 방이 아닌 것 같은 기분

in #kr-diary • 6 days ago

내일 건강검진이 있어서 평일이지만 본가에 왔다. 근데 며칠전 주말에 그대로 두고 갔던 물건들이 어디로 옮겨졌는지 도통 모르겠다. 이번 주말에 손님이 온다고 하니 집을 정리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왜 내 방에 있는 물건들까지 마음대로 옮겨 놓는 걸까. 책의 위치가 바뀐 것 정도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평소에 두던 물건들의 위치가 달라지면 당연히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물건의 위치가 바뀌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단순히 위치만 바뀐게 아니라 해당 물건이 없어져서 참 난감하다)

보여지는 모습에 정말 많은 신경을 쓴다. (그 친구가 온다고 오래된 가구도 버리고 재정리 하고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과 실제로 대화가 잘 통하는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이 아닐까. 보여지는 것에 신경 쓰기 전에 자기 감정부터 잘 다스렸으면 좋겠다. 왜 이렇게 본질적인 것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지 모르겠다.

침대 위치나 책 위치가 바뀌는 것에 내가 얼마나 민감한지 알면서도 왜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집이나 방이라는 공간은 적어도 나에게는 편안함과 익숙함이 유지되어야 하는 곳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사용하는 공간과 그 안에 있는 물건들만큼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내 방이 내 방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밖에서 여러 가지 일에 치이고 돌아와서라도 편안함을 느끼고 싶은 공간인데, 그곳에서조차 익숙함이 깨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게 참 불편하다.

요즘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조금 심란했다. 음악도 듣고 책도 읽으면서 기분을 전환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조금씩 정리해 보고 싶었다. 마침 이번 주는 같이 지도/일(?)을 하는 학생들이 시험 기간이고, 상사들도 학회나 해외 회의 일정으로 자리를 비우는 터라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래서 집에서 읽을 논문과 책들도 챙겨 딱 왔고, 평소에 미뤄 두었던 공부와 독서를 조금씩 진행하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런데 시작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모처럼 확보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작 쉬어야 할 공간에서부터 마음이 불편해지니 맥이 빠진다. 결국 내가 바랐던 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었는데. 그저 익숙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쉬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밀린 연구를 조금씩 진행하는 것. 그런 소소한 일상을 방해받지 않고 누리고 싶었을 뿐이다. 이런 사소한 일들에까지 마음을 쓰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기에도 불편함이 남는다. 모처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이번 주인데, 부디 이런 기분이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오늘 지하철을 타고 오는 동안에는 이번 프랑스 사태를 계기로 평등의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그에 관한 글을 써볼까 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는 그런 글을 쓰기보다 이렇게 하소연에 가까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니... 계획했던 방향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지금은 복잡한 마음을 억지로 정리해 의미 있는 글로 만들기보다는 그저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라도 마음속에 쌓인 부담을 조금 덜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기록은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사소한 것들이나 작은 디테일은 원래도 신경이 쓰이는 법인데, 오늘은 유독 그런 것들에 꽂혀 버린 날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