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맞이와 사라진 여유

in #kr-diary • 2 days ago

손님맞이를 끝냈다. 준비하는 과정도,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막상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에게는 꽤나 스트레스였다. 뭐, 그래도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좋았다면야……. 손님을 기다리던 중 잠깐 짬이 생겨서 새로 생긴 일감을 처리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결국 하던 일을 멈췄다. 나는 성격이 꽤 급한 편이라, 일감이 생기면 일단 바로 처리해야 마음이 편하다. 나중에 해야지 하고 미뤄 두는 일이 생각보다 잘 안 된다. 잠깐 시간이 났을 때 가볍게 시작하려던 일이었는데, 막상 하려니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화면으로 글을 읽는 일이 여전히 불편하다. 가독성도 떨어지고, 종이책을 읽을 때만큼 내용이 머릿속에 빠르게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다. 아버지는 이제 화면으로 책을 읽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하시지만, 나는 여전히 하드커버로 된 실물 책이나 종이책이 좋다. 물론 단순히 종이와 화면의 차이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에 색칠하거나 표시를 해 두는 편인데, 이런 방식도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또 종이책은 앞뒤로 페이지를 오가며 필요한 부분을 다시 읽기가 편하다. 반면 전자책으로는 그렇게 앞뒤를 오가면서 읽는 일이 어쩐지 쉽지 않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눈으로 훑는 것 이상의 일인가 보다. 나에게는 표시를 남기고, 앞뒤를 오가며 다시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까지 모두 독서의 일부인 셈이다.

11월에는 아마 행정 업무가 꽤 많을 것 같다. 연차보고서나 심사 같은 일들이 주로 11월과 12월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사색할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강의를 찾아보거나 강의 자료를 만들고, 강의나 세미나 영상을 시청하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 독서를 하거나 독서감상문 비슷한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글을 써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결국 책을 한 번 더 돌아보기 위해서다. 읽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내용도 글로 정리하다 보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조금 더 분명하게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니 독서와 글쓰기는 내게 별개의 활동이라기보다 하나로 이어진 과정에 가깝다.

예전에는 책을 읽거나 과학 잡지를 보다가, 혹은 일상에서 생긴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이것저것 조사하면서 과학 블로그 같은 글도 꽤 많이 썼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글을 쓸 만한 질문거리가 예전보다 잘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단조로운 일상 때문일까? 아니면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예전처럼 직접 자료를 찾아보고 여러 정보를 비교하기보다는, 이제는 AI에게 물어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일까? (돌아보면 나의 주된 스팀잇 포스팅 관심사는 과학 관련 포스팅 -> 수학 퍼즐 -> 독서 정리 ; 이런 순서로 뭔가 흘러 가고 있다. )

물론 AI를 활용하면 궁금한 것을 빠르게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어떤 질문 하나를 해결하려고 자료를 찾아다니다가 처음 궁금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호기심이 뻗어 나가면서 또 다른 글을 쓰기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답을 얻는 것만큼이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그런 식으로 호기심을 따라가며 무언가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시간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아 아쉽다.

아무튼 학생들 시험 기간에 조금은 여유를 부리려고 했는데, 어느새 그 시간도 다 지나가 버렸다. 손님맞이도 끝났고, 잠깐의 여유를 누려 보려던 계획도 흐지부지됐다. 이제 곧 행정 업무가 몰리는 시기가 다가오니, 마음 편하게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여유가 생기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정작 그 여유는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요즘 내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책을 읽을 시간만이 아니라, 목적 없이 궁금한 것을 따라가고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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