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점검"이라는 말이 무거워진 시점
"전부 점검" 이라는 말을 가볍게 쓴 시기가 있었습니다.
portfolio 가 30 개 정도였을 때 이 말이 자주 나왔습니다.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면 "30 개 전부 다시 보고 적용하지" 라고 적고 그날 오후에 30 개를 다 펴봤습니다. 사이트 하나당 5 분이면 30 개에 두 시간 반입니다. 한 오후의 작업이고, 점검이라는 단어가 그 정도의 무게로 머릿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119 개가 된 시점부터 이 말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사이트당 5 분이라면 119 개에 10 시간이 걸립니다. 점검 한 번이 하루를 다 먹습니다. 그 하루를 점검에 쓰면 다른 작업이 그날 안 굴러갑니다. 그래서 "전부 점검" 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 말 뒤에 다른 작업들의 일정이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작업을 미룰 것인지, 어떤 작업을 옆 사람에게 넘길 수 있는지. 옆 사람은 없고 1 인 운영이라 미루는 것 외의 선택지가 잘 안 보였습니다.
사이트당 5 분도 사실 낙관적인 추산입니다. 점검의 깊이에 따라 10 분, 20 분이 될 수 있고, 같은 점검이 119 개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걸 머리로 알게 된 시점부터 "전부 점검" 이라는 말이 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다른 말이 자리잡았습니다. "샘플 10 개만 점검" 이라거나 "상위 20 개만 점검" 이라는 말입니다. portfolio 의 분포가 두텁지 않고 양 끝이 얇은 모양이라, 상위 20 개를 점검하면 전체 트래픽의 80% 이상이 커버됩니다. 나머지 99 개는 트래픽 합이 작아서 점검 우선순위가 낮습니다. 이 계산이 합리적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유는, "전부 점검" 이 안전감을 주는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위 20 개만 점검하면 나머지 99 개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가 시야 밖으로 빠집니다. 어떤 사이트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다가 트래픽이 솟아오를 때 그 문제가 같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부 점검" 은 그 가능성을 0 으로 만드는 표현이었고, 그 표현이 가능한 단계에서는 그걸 쓰는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119 개에서 그 표현이 불가능해지면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모르는 채로 굴러가는 사이트가 99 개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운영이 굴러갑니다.
받아들이고 나서도 매번 무겁습니다.
새 점검 항목이 발견될 때마다 "전부 점검" 이 먼저 떠오르고, "10 시간" 이 따라붙고, "상위 20 개만" 으로 좁혀집니다. 매번 굴리는 데 드는 정신적 에너지가 작지 않고, 99 개를 빼고 가는 결정이 자기 안에서 한 번씩 흔들립니다.
"전부 점검" 이 가벼웠던 시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119 개 운영의 일상에는 99 개의 사이트가 점검 밖에 있는 상태를 견디는 결이 깔려 있습니다.
